7추억 5
바로 그때였다. 동생이 일선에서 사귄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여인은 전라남주 광주 어느 곳에서 살다가 동생을 사귀어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조금 배운 것이 있는 여자이었다. 학식이나 인물이나 원래 우리 제수씨에 비유하면 어느 모로도 우월하다. 그렇지만 없는 우리 살림살이에 그녀가 우리 집에 와서 사는 것이 나로서는 마땅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여인을 반가이 맞아주지를 않았다.
사람은 훌륭하지만 한 집안에 제수씨가 둘이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녀가 우리 가정에 불씨가 될 것은 너무도 뻔하다. 그녀가 온 후로부터는 가정불화가 가끔 일어나곤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 집을 전연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수씨 둘이 한 집안에 살았다.
가정이 곤궁하다가 보니 제수씨 두 분은 대구시에 직장을 다녀야만 하였다. 그때 내 동생은 이등상사로 진급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생은 전라북도 전주 부근에 파병되었다. 나는 얼른 생각에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우리 모든 식구들을 동생 있는 곳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그래야만 누구든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자 어머님은 제수씨와 조카들을 데리고 전주로 떠나버렸다. 그러자 광주 여인은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자기 혼자서 이런저런 장사를 하며 따로 나가서 살 수밖에는 없었다. 나는 한 해 농사를 지은 다음 동생이 살고 있는 전주로 찾아가 보았다.
이등상사인지라 동생의 삶은 그다지 궁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고장은 광활한 평야인지라 보기부터가 살기 좋은 고장인 듯싶었다. 뿐만 아니라 동생의 직위가 높은 관계로 그 부대에서 모든 병사들이 동생을 도와주었다. 부대에서 집을 지으라고 많은 목재까지 그냥 얻었다.
어머님의 말씀을 들어보아도 그곳은 인심이 좋은 듯싶다. 나는 혼자서 이렇게 생각을 했다. "기왕에 이렇게 살 바에는 우리 식구가 한 곳에 모여서 살자. 우리 두 형제는 지금 피가 끓어오르는 젊음이 있다. 농촌에서 품을 팔아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 나는 의기양양한 자신감을 가지고 전라도를 떠나 집으로 돌아와서 서마지기 논을 팔았다.
그런 뒤 나는 처와 의논을 하였다. "우리 동생 있는 곳으로 갑시다. 이곳 보다가는 그곳이 훨씬 살기 좋은 듯싶어요. 그러니 우리 이곳에서 더 이상 창피스러운 삶을 살지 말고 전라도로 갑시다. 이곳도 타관이요 그곳도 타관인데 어디로 간들 무슨 상관이 있겠소. 지금 동생이 사는 곳은 어느 모로 보아도 이곳 보다가는 훨씬 나아 보입니다."하고 처에게 그러한 내 뜻을 말하였다.
그러자 처는 펄쩍 뛰면서 말을 했다. "나는 죽어도 동서와 같이 살기가 싫어요. 갈라면 당신 혼자나 가소. 지금까지 같이 살면서 내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압니까? 오늘 당장 팔자를 고친데도 나는 그리는 아니 가겠소." 하며 한마디로 딱 거절을 하였다.
물론 동서 간에 뜻이 맞지 않아 그렇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남편이 말을 하는데 아무런 사정의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성을 내면서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 남편을 무시하는 것 밖에는 안된다. 조금이라도 나를 이해시키려고 하다가 그런다면 말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조건 반대이다. 그러는 처의 행동에 나는 몹시 마음이 언짢아졌다.
해서 나는 욱하는 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처를 꾸짖었다. "당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당신 생각대로 하소. 나도 나대로 나가서 살터이니까." 하고 농사지은 식량만을 남겨두고 논을 판돈을 몽땅 내가 가지고 집을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