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공사기 4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4


그런 뒤 얼마가 지났는지 눈을 떠보니 나는 한방 내실에 들어가 있다. 그 방에는 우리 일꾼들의 밥을 해주는 젊은 아줌마가 한 분 있다. 그분은 남편과 사별을 하고 살 길이 막연하여 두 살짜리 어린아이 하나는 데리고 그곳에 와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용모가 그리 탁월하지는 않아도 보통사람의 모습은 충분하다. 나는 그날밤에 우연하게 그 방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원래 내가 자는 방은 한방 내실 즉 밥주인과 같이 자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그날 밤에는 밥주인의 마누라가 서울서 내려왔다. 그러므로 나는 부득불 식모가 자는 방에서 자지 않으면 잘 곳이 없다.


해서 나는 그 충청도 아줌마와 같이 자게 되었다. 그 아줌마의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이다. 그러나 그분은 나이 보다가 조금 걸망한 편이었다. 남녀 칠 세면 부동석이라고 했는데, 젊은 남녀가 한방에 잔다는 것은 이미 그 결과는 뻔하다. 더구나 시골방인지라 아랫목과 윗목이 따로 있다. 그리고 겨울철이다.


아랫목은 불을 넣은 관계로 조금은 따뜻하지만 윗목은 아주 냉골이다. 그리고 덮고 자는 이불도 단 하나뿐이다. 그러니만큼 서로가 차가운 윗목에 자기를 지원할 수 밖에는 없다.


부인은 나를 아랫목에 자라고 했고, 나는 부인을 아랫목에 자라고 했다. 그러나 부인은 고집하여 윗목에 올라가서 눕는다. 나로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방 한가운데서 자고 있는 어린아이를 아랫목 따슨 곳에 안아서 뉘였다. 그런 뒤 내가 윗목에 가서 누웠다.


그러자 아줌마는 "기왕에 한방에 자는 걸 어렵게 생각한다고 사람들이 알아주겠노. 말 듣기는 한 가지니 아랫목에서 잡시다" 하였다. 사실 그렇다. 두 남녀가 한방에서 잠을 자고 나가는데, 그 누구가 청백을 증명하겠는가. 해서 나도 얼음장 같은 윗목에서 자는 것 보다가는 그가 하는 말대로 하자고 생각을 했다.


설령 초저녁에는 윗목에 가서 잔다고 해도 그 추운 겨울에 결국에 가서는 아랫목에 몰릴 것이 뻔하다. "미안합니다" 하고 나는 그녀의 말대로 이불 밑에 발을 넣었다.


나는 집을 떠난 뒤 꼭 5개월이요, 아줌마는 남편을 사별한 지가 무려 3년이라고 하였다. 그러니만큼 아무 일 없이 하룻밤을 넘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혹 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다 불구자일 것이다. 더군다나 추워서 몸을 한태 대고자는 판국인데 말이다. 나도 그녀도 생각하는 질 수는 마찬가지다.


자정이 넘어갈 리가 만무하다. 내게 본처가 있고 없고는 그녀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행동을 하였다. 하룻밤을 그렇게 넘긴 뒤 그녀는 내가 현장에 나가 있어도 항상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말은 하지 않아도 그녀의 눈빛은 나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우리는 삼일을 한 방에서 잠을 잤다. 그런 뒤 나는 동사장의 부탁을 받고 서울로 올라갔다. 여인은 가는 즉시로 편지를 해달라고 하였다.


먼저 신설동 동신 국민학교를 찾아갔다. 동신 국민학교는 산비탈에 붙은 작은 학교였다. 그 국민학교를 3배 크기로 새로 집을 지을 모양이다. 내가 막 들어가서 일을 착수하였다.


내가 자고 먹고 하는 주인은 학교 바로 앞집에 정하였다. 그 주인댁에는 부친과 같은 중년 노인의 내외가 살고 있었으며, 네 아들 그 위에도 할아버님이 한 분 있었다. 그러한 집에 주인을 해 놓고 보니, 조석 때에는 언제나 잔치를 하는 집처럼 분주하다.


그러나 주인 내외가 여간 좋지 않다. 나를 당신의 아들과 같이 대해주었다. 그러므로 조금 복잡하기는 하여도 재미는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맡은 학교 일은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본래의 약속을 지켜주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첫째, 철을 깔아 흙은 도로로 실어내고 또 하나는 일하는 도중에 암석이 나오게 되면 인력으로 하지 않고 발파를 하여 암석을 들어내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회사에는 남은 내루가 없었다. 죄다 다른 공사에 가지고 가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암석 발파를 하는 것도 가까운 곳에 인가가 많이 있기 때문에 성북경찰서에서 발파 허가를 내어주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막대한 손해를 보고 트럭과 사람의 손으로 그 공사를 하게 되었다.


사람이 사는데 재수가 없으면 모든 일이 그 모양으로 돌아간다. 거기다가 충북선에서 아줌마가 나를 찾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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