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공사기 5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5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했는데, 나는 나를 찾아온 그녀를 박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가까운 곳에 방을 하나 얻어 있게끔 주선을 하였다.


대게의 사람들은 그 여인을 나의 본처인양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마누라의 행동을 하니까 누구든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항상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여인과 관련한 근본에는 항상 일본에 남겨두고 온 미에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딸 요시꼬도 함께.


어른들 없는 집에 처에게 어린아이들을 맡겨두고 나왔으니, 내 마음이 편할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웬일인가 나는 가는 곳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였다.


동신국민학교에서 일을 하는 것도 끝을 보나 마나 적자가 될 것은 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에서 하는 일인데 중도에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 공사의 소장인 김태한씨도 그 공사가 적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게 항상 우리 일을 마쳐 놓고 회사에 가서 기대 보자고 하였다.


그 말은 물론 당신의 책임도 있겠지만 만약 적자가 났다고 할 때에는 자기가 내편에 서서 회사에 가서 사실을 밝혀 주겠다는 말의 뜻도 된다. 적자가 난다면 그에게도 물론 약간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 김태한씨의 부정에 대한 비밀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두 사람은 뭉쳐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10개월 만에 공사는 끝이 났다. 그러나 백 수십 명의 노임이 모자란다. 예상대로이다. 그래서 태한씨와 나는 버스를 대절하여 인부들을 태우고 본사로 달려갔다.


영주 상양 건설회사처럼 아주 망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회사는 돈을 벌고 일하는 노동자들만이 품삯이 없다면 그것은 법적으로라도 인부들의 노임은 받을 수가 있다. 내가 일을 잘못했거나 부정을 하여서 적자가 났다면 그것은 할 말이 없다. 허나 회사 장부와 내 장부가 꼭 같은데 적자가 났다면 그것은 의당 본사에서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인부들을 데리고 본사로 간 것이다.


그날따라 소낙비는 계속 내렸다. 버스가 사장집까지 들어갈 수가 없어 약 200미터쯤 걸어서 들어갔다. 소낙비에 옷이 흠뻑 젖은 사람들의 꼴은 생쥐가 물에 빠진 것처럼 초라하였다. 그런 꼴을 하고 우리는 사장집으로 쳐들어갔다.


처음에는 사장의 기색이 좋지 못하였다. 일을 잘못해서 적자가 난 것이 아니라고 따지기도 하였다.


나는 그자를 마지막 본다고 생각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리고 따졌다. "회사에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오늘 이렇게 벼락을 맞는 거요. 이 장부에 넉 달 동안 일을 한 내 품삯이 있나 없나 한 번 보시오. 나는 그래도 나만이 희생하리라 생각을 하고 거지꼴이 되어 이렇게 찾아왔는데, 일을 잘못해서 적자가 났다고 회사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내 품까지 받지 않고는 이 집을 떠나지 않겠소"하고 따졌다.


그제야 사장의 음성이 조금 낮아진다. 바로 그때였다. 사장 부인이 나왔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은 부인은 사장에게 인부들 품삯은 다 주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그날 인부들의 노임은 다 받았다. 그러나 내 품삯은 하나도 없다. 그 마을 사람들은 당신네들 노임을 못 받을까 봐 걱정을 하다가 내 덕택으로 품삯을 찾게 되어서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그분들은 그날에 나를 보고 참으로 고마운 분이라고 하면서 한턱의 술상을 벌였다.


그 공사에는 여자분들도 수십 명이 끼어 있었다. 그러므로 동신국민학교 앞에 사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공사가 끝이 난 즉시 나는 다시 일거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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