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6
이번에는 내 손으로 직접 일을 하는 돌일을 찾아간 것이다. 일이 있는 장소는 서대문구 홍제동이었다. 홍제동 개천가에 석축일이 많았다. 여자는 신설동에 그냥 두고 혼자 그리로 갔다. 내 손으로 일을 해야만 하는 품팔이다가 보니 돈을 번대로 그저 식대에 불과할 뿐 큰돈을 벌 수는 없다. 항상 도급자로 남을 데리고 일을 하다가 내 손으로 직접 일을 하게 되니 돈벌이는 안된다 할지라도 마음은 그전보다 훨씬 더 편안하다.
그곳에 가서 약 십일 쯤을 일했다. 그때 나는 한방에서 여러 동료들과 같이 자고 먹었다. 그러고 있을 즈음 아무런 소식도 없던 집사람이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내가 있는 곳 홍제동을 찾아왔다. 그전에 내 동생이 한 번 왔다가 갔기에 그로부터 내가 있는 곳을 알았던 모양이다.
별안간 아무 준비도 없이 혼자 있다가 가족들이 다들 올라왔으니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안이 벙벙하였다. 해서 나는 다급한 김에 이웃 아무에나 돌아다니면서 빈방을 구해 보았다. 설령 빈방이 있다고 하더라도 방세를 줘야만 한다.
별안간 돈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작은 마루가 있는 판잣집을 하나 빌렸다. 얼마간 일을 해서 돈을 벌게 되면 그때 가서 방을 얻으리라 생각하고 우선 임시로 얼마동안 있기로 하고 빌린 것이다.
그러니 집에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남아 있고, 처와 자식 온 식구가 다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나는 눈이 캄캄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죽든지 살든지 같이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식구가 많다고 해서 방을 한 칸 더 얻을 형편은 아니다. 우리 식구가 있는 그 작은 판잣집에서 모두 함께 살아야만 한다.
바로 그때였다. 신설동에 사는 밥주인이 나를 찾아와서 일거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일거리란 일상 석축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장소는 동대문 바로 옆에 있는 이화대학부속병원 내에 있다. 나는 이 노인을 말을 듣고 곧바로 그리로 찾아갔다.
원장이 나와선 단가를 묻는다. 나는 대강 어림짐작하여 육만 원을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병원 측에서는 오만 원으로 하자고 하였다. 해서 오만 오만 원에 결정이 되었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동생과 또 한 사람의 일군을 데리고 현장으로 나가 일을 시작하였다. 단가가 너무 높은 것도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틀에 끝을 낼 일을 삼일을 걸려서 일을 마쳤다. 그리고 보니 한 사람의 품삯을 준다고 하여도 내게 돌아오는 돈은 오만 원이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