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1
이리하여 나는 무사히 그 일을 해결을 보고 신광회사일에만 전력을 다하였다. 변호사의 수고비도 신광사 회장님이 다 담당하였다. 나는 공사장에서 일만 잘하면 된다는 그러한 뜻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도 열심히 성의껏 일을 하였다.
2개월이 못되어 석축공사는 끝이 났다. 나는 조금 생긴 돈으로 홍은동 변두리에 조그마한 땅을 사서 여섯 칸의 집을 지었다. 무허가로 집을 지은 것이다. 어느 날 하루 경찰서에서 나와 머릿방 창문틀 하나를 뜯어버렸다. 그리고 나를 서대문경찰서까지 오라고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4.19 혁명이 일어났다. 이틀 동안이나 꼬박 학생들이 서울시가지에 진을 쳤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온 나라가 별안간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무정부 상태이다. 이러함으로 무허가 건축에 대한 말도 일채 쑥 들어가 버렸다.
사람이 들어가서 살아도 전연 아무런 말이 없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그때부터 판잣집 신세를 면하게 된 것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전전긍긍 방황을 하던 나도 이제는 누구도 부럽지가 않다. 어른들도 기뻐했다. 행상장수를 하던 우리 집 사람도 이제는 그와 같은 고생을 다 망각하고 젊음을 위하여 눈썹을 그리고 앞면에 아니 입가에까지 화장을 하였다.
사람이 사는 데는 반드시 하늘에 복이 내려져야만 한다. 처음 홍은동에 들어설 때 우리의 칠, 팔 식구는 노숙을 하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은 부자이다.
방이 남아서 나도 남을 빌려주게 되었다. 형무소 안에 있을 때를 생각하면 꿈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물러간 우리나라는 그 정치인들의 무능함이 현저하게 나타나서 모든 국민들이 안심을 하고 살 수가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간 뒤 윤보선씨가 대통령이 되고 장면 박사가 국무총리로 들어앉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무능하다는 말을 곧잘 들었다. 사실이다. 그분들의 자랑거리라면 대통령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과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근을 한다는 그것밖에는 없다. 물론 절약도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도시락을 이용하고 버스를 타고 나닌다고 해서 그것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