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4
그녀는 그 이후로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그 공사가 끝난 뒤 김태한씨와 회사원들은 다들 상경을 하고 나는 임계에서 또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그것 역시도 석축일이었다. 병원집 일이다.
그것은 날일이기 때문에 보통 인부들 세 사람 품을 받고 일을 하였다. 그런데도 박여사는 하루 한 번씩 꼭꼭 내가 하고 있는 일터에 와보곤 하였다. 여인의 한 번 준 정은 남자들 세계와는 전연 다른 모양이다. 동성끼리인 줄 알면서도 그녀의 눈초리는 항상 나를 원망하는 눈치였다.
어떤 날은 일부러 내가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와서 자기가 운영하는 상점으로 가자고 나를 유인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도리가 아니라는 것을 자상하게 말해주었다. 서로 간에 모르고 행한 일은 어쩔 수가 없지만, 동성간인줄 알면서 그녀를 또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달 남짓 되어 그곳에 일을 끝 마쳤다. 바로 그때였다. 정선군 북면 석곡리(현재 정선군 화암면 석곡리)라는 곳에 수리조합 일거리가 있다고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그 일을 해달라고 매달리다시피 애원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바로 정선군 북면 석곡리를 찾아갔다.
떠날 때에 박여사는 내게 파자마 한 벌과 수건 하나를 선물하였다. 사십이 가까이 되도록 살았어도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는데, 하물며 여자 편에서 선물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임계를 떠나 석곡리에 이르자 수리시설을 도급한 자가 미리 그곳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설계도를 내게 내어 보이며 될 수 있는 한 공사에 자료를 적게 들도록 하라고 누차 말을 하였다.
하지만 그 공사는 내가 맡은 도급이 아니다. 그러하므로 부실공사는 할 수가 없다. 그때 나는 그 공사에 그저 소장 자격으로 일을 할 뿐이다. 내게 일을 맡긴 권사장은 딴 공사로 나간 뒤 그 공사가 준공을 할 무렵에야 한 번 다녀갈 뿐이었다. 처음 공사를 시작하던 날 정선군수가 참석하였고, 경찰차장, 북면 면장, 지서주임 그리고 석곡리 동장 외 유지들이 다들 모였다.
나는 그 공사에 책임자요 소장이라는 명목 하나 때문에 그 공사에 대한 설명을 알기 쉽게 일일이 다 말해주었다. 군수나 경찰서장이라 할지라도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턱이 없다. 그저 내 말이 끝이 나면 무턱대 놓고 박수만치곤 하였다.
이것이 무슨 뜻인고 하면, 일을 하기가 그만큼 수월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공사에 대하여 많이 안다고 하면 일하는 도중에 이것은 이렇게 해야 하고, 저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껀껀이 따지고 들겠지만 이들은 그 공사에 대해서 아주 까막 무식이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하고 반문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