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공사기 13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3


서울에서 사오 명이 내려갔다. 그때가 음력으로 삼월달이다. 그런데 대관령 고개를 막 넘어서자 별안간 함박눈이 퍼붓는다. 그러나 대관령은 그런대로 억지로 넘어갔다. 헌데, 삽짝령에 들어서자 벼랑처럼 가파른 길에 벌써 눈이 한 자 정도나 쌓여 있다. 그러므로 버스가 그 령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서 차를 밀고 그 령을 넘어야만 하였다.


대관령 보다가는 조금 적지만 삽짝령이라고 하는 재는 그 경사가 여간 심하지 않다. 그 령을 넘는 데는 한 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그래서 석양 나절에 우리는 임계에 도착했다. 백 여호 남짓 사는 소도시다. 그때 서울에서 그곳으로 내려간 사람은 불과 다섯 명이고 나머지 인부는 그 고장 사람을 썼다.


그다음 날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굴토를 한 다음 석축을 쌓기 시작했다. 그 석축의 이름은 다라발 옆에 붙어 있는 "우인구"다. 우리말로 이를테면 다리발소데라고나 할까. 그러한 석축 쌓기. 그것을 왜놈말로 "우인구"라고 한다. 나는 그 석축을 도급으로 하기로 계약을 했다. 그러나 잡부 일꾼들은 모두 국제토건 회사에서 노임을 준다. 나는 누워서 떡 먹기로 내쪽에서 애가 탈 정도로 뛰지 않아도 된다.


한 평의 석축을 쌓게 되면 한 평 값만 받으면 그만이요, 두 평을 쌓으면 두 평 값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도 단가는 아주 좋은 편이었다. 하루 일을 하게 되면 보통 잡부들 육칠일 품삯은 가능하다. 돌쟁이가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은 임계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말이 쫙 퍼졌다.


보름이 다 되어 다리발소데의 일은 끝이 났다. 그래서 우리들은 마지막 가는 날 밤에 준공식 비슷하게 술을 한잔씩 하였다. 술을 먹을 줄 모르는 나인데도 그날 저녁에는 권하는 김에 사, 오잔의 술을 연거푸 마셨다.


홍몽천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언제쯤 되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같이 앉아 술을 먹도 있던 동료들은 아무 데도 없다. 그래서 나는 깜깜한 방안을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일어서려고 하였다.


그때였다. 내 손끝에는 여인의 치맛자락이 스친다. 이상한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서편 문쪽으로 나가려고 일어서니 그쪽 역시도 여인이 하나 누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술이 너무 취해서 남의 집 내실에 들어가지 않았나 하고 그 자리에 앉아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한 여인이 내 손을 꼭 거머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여인은 밖으로 뛰쳐나간다. 어두운 밤이라서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두 여인은 분명 나 한 사람을 보고 옆에 와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내 손을 잡는데 한 사람이 뛰쳐나갈 이유가 없다. 자세히 정신을 차려보니 그 방은 바로 내가 거처하고 있는 방이다.


그래서 나는 내 손을 잡은 여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전에 나간 사람은 당신의 친구라 하고 그녀는 지금 반장사를 하고 있는 한 나그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과부생활을 한 지가 십 년이 다 되어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부끄럼 하나 없는 말투로 무례를 용서하라고 하였다.


그녀가 말하기 전 처음에는 혹시나 내게 무엇을 노리고 접근하는 여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자상한 말을 듣고 나니 다소 안심이 되면서 그의 의도가 무엇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 수가 있었다.


그때 내 나이는 삼십이 조금 넘었을 때이다. 그와 같은 젊은 시절에 그녀의 부탁을 듣지 않았다면 그것은 바보천치이다. 헌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인은 밀양박씨였다. 그래서 나는 그다음부터 그녀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 여인도 처음에는 내가 박가라는 것을 전연 알지를 못하였던 관계로 동성의 성관계가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박씨는 순천박씨든 밀양박씨든 같은 박씨이기에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이 당시 풍속인데, 나는 그것을 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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