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5
다음날 공사 현장으로 출발을 하였다. 그런데 한 번도 가본 곳이 아니라 어떻게 가야 할지를 몰랐다. 버스를 타고 정선을 가려고 어떤 노인장에게 물어보니 그곳으로 가는 버스는 해가 다 넘어갈 무렵에나 있다고 하면서, 거기까지는 이십 리밖에 안 되니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훨씬 빠르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씨와 나는 걸어서 가만가만 들어갔다.
그런데 이십 리라고 노인장이 얘기를 했는데, 그곳에 가서 물어도 한 이십 리 정도 안 될 거요 한다. 우리가 정선읍에서 걸어 들어온 것만 하여도 이십 리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그곳에서 또 이십 리라고 하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해서 이씨는 "정선서 이십 리라고 했는데, 이십 리쯤 들어왔는데 또 이십 리란 말이요?" 한다. 그러자 그분은 "사실상 킬로 수를 따진다면 그렇게도 들릴지 몰라도 사실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실은 강원도라고 해서 킬로수야 없을라고요. 그런데 강원도는 아직도 옛날처럼 그렇게 말을 하는 노인들이 더러 있지요.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아무렇게 말을 하지 않고 꼭 킬로수를 계산하여 말을 합니다. 그러하므로 강원도 오시거든 학생들에게 물으면 틀림이 없을 겁니다"하고 자상하게 말씀을 해 주셨다.
해서 우리는 거기서 이십 리를 잡고 석곡리까지 걸어서 가니 그의 말이 맞는 듯하였다.
석곡리에 이른 오후 두 시경밖에 되지 않았다. 그곳에 가서 우리는 김사장의 말대로 행길가 주막집에 거처를 하게 되었다. 그 댁은 술을 파는 술집이요, 아들이 하나 딸이 둘이었으며, 남편은 없었다. 그 집에 들어가서 한 시간 반쯤 되니 수리조합사장이 들어왔다.
해서 나와 사장은 현장에 가 보았다. 그런데, 현장에는 레베루(수평기)가 없었다. 그러함으로 그 긴 높은 밭을 수평으로 그 경사를 계산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강물과 들판에 높이는 일 미터도 안 된다. 그리고 그 길이는 거의 일 킬로에 가깝다. 그러나 그 경사는 거의 평지와 같다. 해서 나는 일하기 쉽게 레베루가 있으면 잠시만 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말을 들어보니 레베루가 없는 듯하였다.
가만히 보니 이자도 강릉 부근에 돌아다니면서 하천이나 헤맨 자가 분명하다. 두 군데 공사를 하는 자가 레베루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해서 나는 레베루 없이 수평으로만 그 공사를 하였다.
군수, 면장, 지서주임 같은 사람이 나와서 인사를 하게 되면 그 마을에는 으레 큰 개를 잡아 인사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마을의 전통인 모양이다. 대접을 하는 것은 무조건 큰 개를 잡는다.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장사들이 올 때마다 큰 개를 잡는다.
그래서 나 역시도 개고기를 먹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조금 꺼림칙하였으나 나중에는 보통 생선 고기처럼 맛있게 먹었다. 돌쟁이나 목수나 같은 사람을 보고 군수가 나와도 깔끔하게 소장님이라고 존칭을 붙인다.
내가 그와 같은 대우를 그들에게만 받는 것은 내가 많은 공사일을 해봤기 때문이다. 일 킬로 사이에 레베루가 없으면 여간 정신으로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큰 소에 다가가서 구멍을 내게 하고, 그 높고 긴 밭 허리를 끊어 대략적인 측량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무조건 사람들을 삼십여 명 붙였다.
상류의 물 보다가 삼십 센티를 깊이 팠다. 계속해서 내려오며 그렇게 파 내려왔다. 그런데 일 잘될라고 하니 우리들이 판 깊이가 그들 편보다가 났다. 그래야만이 콘크리트를 하면 단일 생시도 여유 없이 꼭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