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공사기 17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7


강씨는 개스이 또랑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그 밑에 일꾼들이 사오 명이 되었다. 그들은 전부가 다 한 지방 사람들이다. 그러함으로 신광건설회사 직원들은 그 지방 사람들은 다들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해서 나는 처음으로 듣는 말이기에 강씨를 찾아가서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 밑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목이 말라서 두어 번 그렇게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강씨에게 시멘트를 파는 것을 회사 직원이 보았다고 하면서 시멘트 50포 값은 내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가서 답변을 하라고 하였다.


강씨는 일군들이 그렇게 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며 내게 빌다시피 사정을 한다. 해서 나는 그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그때 그 공사는 시일이 너무나 오랫동안 걸려 일거리만 많았지 그다지 큰 재미는 보지 못하였다.


그저 먹고 살 그 정도밖에는 아니 되었다. 그 일이 끝이 나고 며칠 후에 봉일천에서 문산으로 들어가는 다리공사를 족숙 박일동씨가 맡았다. 다시 말하자면 그 현장 소장이 박일동씨였다. 해서 나는 족숙 박일동씨에게 다리 양쪽에 있는 우인구라고 하는 석축을 나에게 달라고 하였다.


일동씨는 재료까지 죄다 맡아서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돈이 없어 재료까지는 맡아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일동씨는 돈은 내가 대어 줄 터이니 한 번 해보라고 하였다. 사실상 그렇게만 해준다면 돈은 많이 남는다. 그렇지만 재료까지 대어 일을 하자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일동씨는 돈을 대어준다고 하니 나로서는 그럴 수 없이 고맙고 감사하다. 그러나 돌 쌓을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석공은 우리 집에 사는 김영업씨라고 하는 노인과 나와 둘이서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일이 제대로 잘 되다가 보니 우리 둘이서 일을 하여도 이십여 일 만에 석축일이 끝이 났다. 박일동씨 말고 다른 회사원들도 전자부터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회사직원들은 소장인 박일동씨에게 석축에 대한 돈은 얼마나 지출해야 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소장 박일동씨는 김포 도로확장공사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으니 회사에서 나온 단가 그대로 주라고 하였다.


그렇게 계산해서 돈을 받고 보니 그때 돈으로 오백만 원이 조금 넘었다. 그러하므로 내가 돈을 받을 때는 나는 그분들에게 술값을 하라고 십만 원을 주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로부터 이삼일 후에 화폐가 교환되었다. 말하자면 백만 원이 십만 원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돈은 우리 집값 보다가 많았다. 다시 말하자면 6칸짜리 집 한 채 보다 금액이 많다는 것이다. 가난하게 살던 나로서는 마음이 든든하다. 그 돈만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토를 사도 옛날 우리가 살던 그 정도 보다가 훨씬 많이 살 수가 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죄다 아버님을 가져다 드리니 여간 기뻐하지를 않는다. 그렇게 되다 보니 피차간 기쁘다. 동생과 나는 잘 곳이 없어서 행길에서 자던 일을 생각하면 이제는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때 고향에 있는 동생이 올라와서 아주 평평한 하천부지 삼만 평이 났는데 돈만 있으면 그 땅을 사면 당장 부자가 될 것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던 집을 팔고 또 봉일천에서 번돈과 합쳐서 죄다 어머님을 주어 고향에 내려가서 그 땅을 사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나는 남의 집에 셋방살이에 들어갔다. 그리고 고향 신령으로 내려가서 내가 산 땅 3만 평을 구경하였다. 현지에 가서 보니 땅 3만 평이 여간 크지를 않다. 그곳에다 사과나무를 심는다면 나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과수원을 가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하고 같이 가서 그 하천부지의 지질을 보며 한 바퀴 휘돌아 보았다. 한 바퀴 도는데 약 한 시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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