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중장년기 2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2


그래서 나는 그댁 일을 하다가 상복을 입게 되었다. 해서 나는 그 집을 팔기로 하고 많은 돈을 내어 영구차 큰 것 한대를 대절하여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수동에 있는 우리 산에 안장을 하였다.


그런 다음 박석고개 집을 팔아 남의 빚을 다 갚고 우리는 성동구 천호동 재건촌이라고 하는데, 다 찌그러져가는 초가집 삼 칸을 사서 이사를 하였다. 그때 돈 삼만 원을 주고 샀으니 집 꼴이 돼지우리 보다가 나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사람 사는 꼴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나는 어디 일을 할 거리가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하루 한강변으로 나가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강변을 한참 동안 올라가 보니 한강변에 자갈이 많이 있고 놀고 있는 땅이 하나 보인다.


해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내 잘 아는 김승조라고 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그 자갈밭 땅 주인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김승조씨는 그 사람을 안다고 하였다. 해서 나는 그에게 그 땅을 내게 소개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김씨는 그 땅은 한강물이 해마다 드는 곳인지라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곳에 오니 일할거리가 없어 비록 자갈밭이라도 사서 일을 해보고 싶으니 뒷날 걱정은 하지 말고 소개나 해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김승조씨는 내 말을 거부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그 댁을 찾아갔다.


그 땅 주인의 집은 산고개를 두 개나 넘어가서 있었다. 땅 주인을 만나니 김승조씨는 늘 보는 친구처럼 서로 간에 다정하게 "아이고 여기까지 웬일이야." 하며 얘기를 주고받는다.


처음 찾아간 나는 그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인사가 끝이 나자 김승조씨는 우리 두 사람이 찾아간 연유를 말하였다. "이분이 글쎄 한강변에 있는 이씨의 땅을 보고 사달라고 하기에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요. 사실상 그 땅에 무엇을 하여도 안심할 곳이 못 된다고 하였는데, 그래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이 양반이 자꾸 가보고 땅값이나 알아보자 하기에 왔지" 하면서 김씨는 내편에 서서 말을 한다.


그러자 땅 주인은 "글쎄 나도 그것이 골치가 아프다카이. 땅은 별로 좋지 않지만 수수는 키가 커서 물이 들어도 아무 일이 없는데, 이놈의 산골전지가 많다가 보니 어디 그곳까지 손이 닿아야지"하면서 그 역시도 물이 든다는 것은 시인하였다.


그 말을 들은 김씨는 가부간 그 땅 값이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땅 주인은 평당 사십 원씩 달라고 하였다. 해서 이번에는 내가 말을 하였다. "잠실에 내가 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는 평당 25원이면 얼마든지 살 수가 있겠는데, 내 집이 재건촌에 있으니 어디 그곳까지 가서 소일을 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가까운 곳에 사서 소일거리 삼아 해볼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땅값은 40원이라고 하니 너무 비싸서 저로서는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김승조씨는 여기까지 찾아온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조금은 생각해 줘야 하지요 하면서 땅값을 깎아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김씨를 바라보다가 "자네가 그렇게 하니까 내가 그저 버린 셈 치고 35원까지 해주겠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김씨가 내게 권하여 잠실 보다가는 조금 비싸다고 하지만 그 대신 이곳은 가까우니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해서 나는 조금 더 주는 셈 치고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그날 당장 계약을 했다. 그런데, 김승조씨는 내 소개비를 받지 못할까 봐 복덕방을 하는 이갑석 노인을 사이에 넣어 계약을 하였다. 그것은 김승조씨의 얍삽한 꾀이다. 하지만 나는 복비를 이갑석 노인에게 주었다. 그러나 김승조씨는 거기에 대한 얘기는 일채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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