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중장년기 4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4


해서 나는 그 논을 팔아 천호 국민학교 앞에 있는 집터 칠십 평을 샀다. 광주로 다니는 버스길 바로 옆이었다. 집터가 아주 네모 반듯하였다. 그런데 그 집터가 어떻게 잘못되어 내게 이전이 되지 않고 차일 피일하면서 기한 보다가 십 수일이 자나 갔다.


바로 그때였다. 내 동생이 서울로 올라와서 죽느니 사느니 하면서 또 드러눕는다. 내 집 두 채를 죄다 팔아먹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또 내게 와서 죽느니 사느니 하였다. 이 세상에는 이제 단 두 형제뿐인데, 동생이 못 산다고 하니까 형인 나는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해서 나는 그 집터를 팔아 시골 고향에 논 열세 마지기 황소 한 마리를 사주고 동생이 고향에서 노름한 빚을 내가 다 갚아 주고 집의 기와도 이어주고 구루마도 한 대 사주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이제 서울에는 내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시골에 논 열세 마지기와 황소 한 마리, 구루마 한 대, 그것은 내 것이다. 그런데, 동생은 2년을 농사짓고 나더니만 논 세 마지기 황소 한 마리, 구루마 한대를 팔아먹고 가족들 죄다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서 철거민촌에 삼간집 그것 한 채를 달라고 한다.


그것은 동생이 가지고 있는 산과 바꾼 셈이다. 해서 나는 고향에 있는 논을 종제에게 부치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종제도 농사가 너무 많아 부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일이 그렇게 될 줄 알았으면 서울에서 집을 한 채 크게 지었으면 부자가 되었을 텐데, 동생이 그렇게 하는 바람에 나는 또 한 번 거지가 되듯이 하였다.


해서 나는 그 땅을 팔 수가 없어 그 논에다 사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그 사과나무 사이에는 배추와 무우를 심었다. 그런데 배추씨를 주고 또 밭을 매려고 하니 사람의 손이 여간 많이 들지를 않는다. 해서 나는 안 마을 큰 동리에 가서 여자들을 삼사 명씩 구하여 밭은 매곤 하였다.


그러나 배추씨를 너무 많이 뿌려서 여자 한 사람은 매일 써야만 했다. 그 여자는 그 마을 동장의 제수씨였는데, 그때 남편은 사별하고 어린아이 둘만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인은 나를 좋아하였다.


해서 나는 자연적으로 그 여인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용천동에서 제일 유식하다는 조태수라는 사람도 잘 알고 내가 종종 만나 술을 한잔씩 하는 그 마을 동장도 잘 알며, 신령 바닥에서 이름있는 사람은 대부분 다 안다.


이러함으로 내가 잘 아는 여인의 종조카도 천통면 면서기로 있으면서 내게 인사를 깨끗하게 하였다. 그 역시도 저의 숙모가 너무나도 가난하게 사니까 나와 좋아하는 줄 알아도 거기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었다. 내가 왜 남의 많은 여인들을 상대로 했냐 하면, 서울에서 집 두 채 값을 동생에게 빼앗기고 나니 남은 몰라도 내 마음은 반 미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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