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5
처가 있는 자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요, 내 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내 마음이 미쳐 있으니 그 당시 나로서는 앞뒤 가릴 것이 없었다. 허나 무식한 내가 평생 번 돈을 동생에게 두 번을 실패하니 어찌 내 마음이 온전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환장이 된 사람처럼 수치스럽다는 생각도 누군가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도 일체 하지를 않았다.
내가 장춘당 공원에서 남산팔각정까지 도로를 닦을 때는 집 두 채 값을 버리고 환장지경에 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국제토건 회사에서 일을 하였지만 서울 시내에서는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일을 할 때에는 많은 석공들이 내게 사장님, 사장님하고 불렀다. 그렇게 되니 장춘당 공원에서 술을 파는 여인네들이 또 수십 명씩 앉아 노는 사람들도 내가 진짜 사장인 줄만 알고 사장님, 사장님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므로 장춘당 공원에 가면 나를 잡을라고 기다리고 있는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환장된 나는 얼굴만 고우면 무조건 상대하였다. 내가 지금은 늙었지만 그 당시는 사십 살 좌우간이었다. 사람의 마음이 심란하니 그까짓 여자 따위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왜인고 하면 그것은 여자들의 인권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완전히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여자들을 상대하였다. 서울서 내가 십수 년 간 번 돈은 단 돈 일전도 없었다.
미치기는 하였어도 후일을 생각했다면 그렇지가 않을 텐데 사람의 속이 타게 되니 나로서는 가족들 생각도 죄다 잊고 있었다. 여인들을 많이 알게 된 것은 그래서이다.
그렇지만 나는 남편이 있는 여인들은 일체 사귀지 않았다. 다만 내가 미안하게 생각되는 것은 내처에게였다. 하지만 내 신세가 그렇게 되다가 보니 내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란 인간은 어떠한 일이 생긴다고 하여도 두렵다, 미안하다, 내 팔자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하는 생각으로 서울 시내에 살고 있는 많은 여인네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버릇이 시골까지 가서도 그 여인을 사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용천동 논에 심은 사과나무 그것만으로는 내 마음에 차지를 않는다. 해서 나는 용천동에 심어 놓은 과수원 논을 전부 다 팔아서 경주시 부근 화천리라는 동리에 묵어 있는 땅 만 평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