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6
그것을 내 혼자 하려고 사놓고 보니 나의 고모님이 그 땅을 반 달라고 하였다. 고모님이 그렇게 부탁을 하는 데는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만 평 중에서 사천여 평을 고모님을 드렸다. 그리고 그 육천여 평에 사과나무를 죄다 심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나무를 다 심어 놓고 자갈을 파내어 보니 흙 보다가 자갈의 량이 배가 넘는다. 해서 나는 그 땅에 나무를 키울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땅을 그냥 버릴 수는 없다.
나는 전력을 기울여서 자갈을 파 내었다. 물론 맥이 풀린다. 하지만 팔아먹으려면 겉은 번듯하여야 된다. 그래서 나무를 심어 놓고 내 목숨을 걸어 놓고 일을 하였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나를 가리켜 미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2년째 되던 해에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고 밭에는 깨가 한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이것을 본 인근 동네 사람들은 그때는 나를 보고 성공하였다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우리가 개간한 땅에 반은 깨를 심고, 그다음에는 여러 가지 잡곡을 심었다. 깨만 네 가마가 났다. 이팟이 몇 가마 된다. 콩도 제법 많다. 고추도 아주 잘 되었다.
그곳에 가서 3년째 되던 해는 사과가 여간 많이 열지를 않았다. 그것도 신품종 부사, 육오, 홍옥이 많았다. 그러므로 그 화천지방에서는 우리 과수원을 다들 탐을 내었다. 그때는 서울 있는 우리 집 식구가 죄다 그곳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어머님은 그 여인을 몹시 미워하였고, 불화가 잦았다.
일이 그렇게 되다가 보니 내가 용천동에서 데리고 간 그 여인을 2년 동안 일을 한 품은 일전도 주지 않고 그냥 내 보내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 집안 식구만 그 과수원을 만들었다면 그렇게 쫓아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과수원을 만드는 데는 그 집 식구 둘, 우리 집 식구가 둘, 네 사람이 그 과수원을 완전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