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일탈 5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5


그런데 곁에 가서 보니 빈집같이 생긴 판잣집이 하니 있다. 원두막처럼 단칸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빈집인 것만 같았다. 판잣집 문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런데, 그 판잣집 문틈에서는 희미한 호야 불빛이 보였다. 그 안에 사람이 있는지는 몰라도 분명 불은 켜져 있었다. 추워서 죽을 판국에 처해있는 나는 엉겁결에 “주인 있습니까?” 하고 소리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밤중에 남의 집에 찾아가서 큰소리로 주인은 찾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을 판국에 이르렀으니 그렇게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판잣집 문이 슬며시 열렸다. 그런 뒤 그 방안에서는 누구야 하는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염치를 무릅쓰고 판잣집 문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방안에는 백발노인이 한 분 계셨다. 의복이 남루하다. 고개를 들이민 나는 내가 급함을 대충 말씀드렸다. 그러자 노인장은 안으로 들라고 했다. 체면을 차릴 여유가 없었다. 노인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나는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노인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큰 절로 인사를 했다. 그러자 노인장은 불이 가득 담긴 놋쇠화로를 내 앞으로 들이밀면서 불을 쬐라고 했다. 노인장의 풍채는 매우 점잔아 보였다. 그러나 그 행색이 너무나도 남루하다. 얻어먹는 거지 옷만도 못한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방안에는 일체 아무것도 없다. 있다는 거래야 단 놋쇠화로 그것이다. 무엇을 하는 노인인지,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벽을 보면 종이 한 장 바르지 않고 사벽 틈으로 바깥이 훤히 내다 보였다. 허나 나는 그날 그 집을 보지 않고 노인장을 만나지를 않았더라면 어김없이 얼어서 죽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 어른은 나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시다.


숯불이 담긴 화롯가에 손을 얹어놓고 얼마간 있으니 그제야 내 몸에서 피가 도는 듯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장은 담배를 피우면서 “젊은이의 고향은 어디요?”하고 물었다.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수동이라는 마을입니다.”, “그래? 성씨는?”, “박가입니다.”, “어디 박씨인고?”, “순천 박가입니다.”, “음, 같은 박가로구먼, 나는 밀양 박가일세.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시조는 다 같은 시조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박가끼리 혼인을 하면 욕을 했지.” 하였다.


그다음은 내가 물었다. “어른께서는 혼자 여기서 무엇을 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어르신네 혼자인 듯싶은데요.” 노인장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나는 두 번 다시 묻지를 않았다. 화로 위에 고개를 떨어뜨린 체 입을 다물었다. 노인장은 기다란 장죽에 담배를 한 대 비벼 넣은 다음 대꼬파리를 화로 깊숙이 묻고 나더니만 두 볼이 쑥 들어가도록 쭉쭉 소리를 내면서 힘껏 빤다.


집에 계시는 우리 할아버님과 꼭 같다. 할아버님도 담배를 피울 때는 이 노인장처럼 대꼬파리를 화로 가운데 깊숙이 파묻고 불을 붙인다. 그것은 노인네들의 입에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얼마 후 노인장은 담뱃대에 불을 붙여 물었다. 그런 뒤에서야 노인장은 입을 열어 내 물음에 대답을 한다. 얼굴 모양도 그렇게 생겼지만 여간 입이 무겁지가 않다. 어느 모로 보아도 그런 곳에서 그렇게 살아갈 어른이 아닌 듯싶다. 음성 소리도 매우 굵직하다.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이 당장 그 모양이니까 그분에 대한 사실을 알고 싶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입을 연 노인장은 이렇게 말을 했다. “젊은이가 물으니 내가 얘기를 하지. 내 고향은 경상남도 하동이라네. 그리 크진 않아도 매우 아담한 고장이지. 그리고 내 성은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박씨이고 말이야. 젊은이가 물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내 얘기를 들어보면 나의 현실을 대충 짐작할 수가 있을 걸세. 젊은 사람 앞에서 이러한 얘기를 하게 되면 실어인 줄을 알면서도 밤도 길고 잠도 오지 않으니까 추억을 더듬는다 생각하고 지껄여 보는 기지. 젊은이가 아는지는 몰라도 경남 하동 포구라면 그리 크다고는 볼 수 없지만 시골로 치고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둘째로 따뜻한 곳이야. 이러한 고장에서 나는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났거든. 시골 부자 천석꾼이라고 하면 대단히 큰 부자이지. 그런 집 외동아들로 태어났으니까. 자랑 같지만 내가 길거리에 나가게 되면 내 이름 대신 복동이라고 불렀다카이. 열여덟 살에 사서삼경을 다 읽고 근동에서는 내가 제일가는 선비라고 사람들은 칭찬을 했는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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