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일탈 6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6


"말하자면, 우리 집에서는 내가 금동이었지. 내가 많은 글을 소싯적에 다 배운 까닭도 사는데 구애받지 않고 독사장을 사랑방에 모셔놓고 글을 배웠기 때문이지. 그 시절에야 어디 학교나 있었나. 사서삼경을 다 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기껏해야 주역 따위의 책이나 앞에 놓고 연구를 한답시고 세월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었지.


나 역시도 그랬지. 하지만 나는 열 살 전에 어머님을 잃고 계모 밑에서 자랐는기라. 우리 계모는 언제나 나만을 미워했지. 그것도 어릴 때라면 또 모른다. 철이 들어 알만큼 아는대도 당신이 나은 자식만 자식인 양 나는 아들 취급을 하질 않았다카이.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계모보다가도 더 악질적이었는기라. 그렇게 못되게 구니까 나도 어머니라는 말이 나올 턱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어머니라고 부르지를 않았지. 나도 사람인데. 그녀가 내게 좋게 대해준다면야 나도 의당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도리겠지. 하지만, 우리 계모는 악질 중에도 악질이지. 그래서 나는 집을 뛰쳐나오기를 결심을 했지. 바로 그때 아버님이 논판 돈이 집에 있었거든. 기회라 생각하고 오십 마지기 값을 몽땅 다 가지고 집을 뛰쳐나왔지. 오십 마지기를 판 돈이라면 시골 촌부자 전재산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 그와 같은 큰돈을 가지고 처음 찾아온 곳이 바로 이 부산항이였는기라.


부산에 오자마자 나는 부산땅에서 제일 크다는 여관을 골라 주인을 정했다카이. 그 돈만 가지면 평생 먹고도 남을 줄만 알았지. 돈 보따리를 가지고 다닐 수가 없어서 여관 주인에게 맡겼더니 그 큰 집을 가진 여관 주인장도 두 눈이 휘둥그레져 내가 무슨 사장이라도 되는 듯 굽신굽신 하더구만.


나는 여관에 주인을 정한 뒤 부산시가지를 며칠 동안 휘돌아 다녔거든. 그것은 도회지에 낯도 익히고 살 구멍도 찾을 겸 겸사겸사로 구경을 한 것이지. 그런데 어느 날 하루 여관으로 돌아오니 내가 자는 방에 예쁜 아가씨가 하나 앉아 있지를 않는가?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주인을 불러 물어보았지. 저 여자는 누구입니까? 주인 없는 방에 저렇게 들어앉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아줌마는 에이 참 박 선생님도 하도 적적해 보이기에 내가 불러왔지 머요. 이웃에 사는 아가씬데 아주 얌전하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인아줌마는 내가 총각이라는 것을 전연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인 듯하였다. 그러나 당장 내가 총각이 아니다고 공개할 수는 없었다. 내가 어른 행세를 해야만 객지생활 하는데 다소의 도움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나는 거절을 하지 못하고 우물우물했다. ‘아이, 박 선생도 시집가는 처녀처럼 무얼 그리 수줍어합니까. 하하하’. 이리하여 나는 그날 저녁에 뜻하지 않게 한 여인을 맞게 되었지. 여관 주인아줌마가 신방을 꾸미듯 주안상을 차려오는 것이 아닌가? 생후 처음으로 여인을 맞게 되었으니 집을 뛰쳐나온 나로서는 영 불안하여 기뻐할 턱이 없었다카이. 여관 주인아줌마가 고맙기는 하나 그 또한 무슨 마음으로 어떠한 음모를 꾸미려고 그러는지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었지. 며칠 밤을 그녀와 같이 동거를 하면서 나는 그녀의 심리가 어떠며 무슨 연유로 나 같은 독신자, 아니 기혼 남자를 취한 이유가 어디에 있나 하는 것을 척도해 보았지. 그러자 그 처녀는 자기는 술집에서 종사해 오던 사람이라고 하였지. 무슨 말인고 하니 여관 주인이 나를 등 처먹을 생각으로 꾸민 연극 그것이다. 참지 못하는 성질을 가진 나는 그다음 날 당장 그 여관을 떠났는기라. 돈만 있으면 그 집 아니라도 얼마든지 살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여우를 피해서 달아나면 호랑이를 만난다는 격으로 다시 주인을 옮긴 곳은 호텔이라고 하는데 인기라. 방세도 여관보다 몇 배 비싼 곳이지. 그리고 이 호텔 안에는 술 마시고 춤추고 하는 기이한 것이 겸해 있어서 나도 그 홀에 간혹 심심할 때이면 드나들곤 하였지. 거기에 취미를 붙이게 되니 좀처럼 발을 뺄 수가 없는기라. 이년 반도 채 못되어 집에서 가지고 간 돈 한 푼도 남김없이 다 써버렸지. 젊은이가 내 말을 들으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지 몰라도 그 당시 내 심정으로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카이. 천석꾼의 아들이 집을 쫓겨 나오듯이 나왔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그 많은 돈을 이삼 년 동안에 다 쓴 것을 생각하면 물론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하지만 시전지 재물을 그 악녀에게 다 빼앗겼다 생각하면 더 많은 돈을 못 쓴 것이 후회가 막급하지 뭔가. 돈을 다 쓰고 난 뒤 바닷물에 뛰어들라고 몇 번이나 바닷가에 나가 보았으나 죽는 것도 팔자에 있는 모양인지 뜻대로 안 되더구먼. 해서 나는 선창가에 나가 노동품을 팔았지. 천석꾼의 아들이 노동품을 판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계모 밑에 있을 때보다 한결 마음이 편하지 뭐야. 그리고 내가 젊을 때이니 선창에 일쯤이야 할만하더구먼. 하숙집에 밥을 붙여놓고 일 년을 꼬박 하니까 제법 많은 돈을 모았다카이. 그래서 나는 친구들의 권고로 장가를 들고 살림을 차렸지. 경북 안동 여자인데 인물은 그저 그렇지만 예의범절로 보아서는 양반의 집 자식이 분명해.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하늘 받들 듯이 받들었는기라.


그녀와 같이 오 년을 동거했는데 아들 둘을 나았지. 그런데 그녀는 우연득병하여 육 년째 되던 해 정월달에 죽었는기라. 기막힌 놈의 팔자이지 뭔가. 그렇게 심성이 착한 여자를 잃은 나는 또다시 허탈감에 빠져 술을 먹지 않고는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보니 이제는 실의에 빠져 일도 하기가 싫고 주정뱅이 신세가 되었지 뭐야. 아무리 자책을 해보아도 용기가 나지 않더구먼. 이제는 또다시 거지가 되어 아이들은 고아원에 맡기고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굶다가 먹다가 그렇게 살아갔지.


허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본심으로서는 계속 미친 짓을 못하겠더구먼. 그래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네. 그 때나 지금이나 선창가에 나가면 일거리야 얼마든지 있지. 몇 달 가지 않아 나는 또 한 밑천을 잡을 수가 있었는기라. 돈이 있으면 사람이 따르기 마련이지. 또다시 사람 하나를 취하였지. 그녀는 나보다가 술을 더 많이 하는 주정뱅이였지 뭐야. 내가 한 잔을 마시면 그녀는 두 잔, 석 잔을 마시고, 내가 한마디 말을 하면 그녀는 열 마디, 스무 마디의 대꾸를 했는기라. 이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온통 먹자판, 싸움판이었지 뭐야.


웬만하면 참고 견디는 나였지만 그녀와 살다가는 살림은커녕 인간의 꼴이 안 될 것 같아서 일 년 남짓 되어 헤어졌지. 이 모두는 내 팔자가 그렇게 생겨났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 생각을 하고 누구를 탓하고 증오도 한 일이 없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팔자소관이라고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은 단념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돈을 벌어도 그 돈이 모여 있지 않고 수십 번 여자를 취해 봤는데도 그녀가 그녀같이 한 꼬치에 꿴 것처럼 꼭 같으니 그것이 내 팔자소관이 아니고 무언가 그 말일세.


그렇게 가는 세월이 금방 흘러가더구만. 인생무상이란 나와 같은 인간 때문에 생겨난 말이겠지. 고희가 지나 팔십에 가까웠으니까.”


여기까지 이야기를 한 노인장은 장죽에 담배를 넣어 불을 붙여 문다. 이야기가 남아있는지 다 됐는지 그것조차도 알 수 없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입에 힘이 없이 쭉쭉 빠는 노인장의 입에서는 실낱같은 연기가 힘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때서야 영감님은 내 물음에 참 답이 나온다.


“똥집같은 판잣집이 하나 있었기는 하였지만, 요 몇 년 전에 불이 나서 그 집이 다 타버렸지 뭐야. 그래서 나는 얼마간 방황하다가 마침내 이곳에 일꺼리가 있다기에 이곳으로 왔는기라. 지금 이 판잣집에서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고 있지. 웃음거리 같지만 죽지 않으면 먹고살아야 하니까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지.”


이 노인장의 이야기가 끝이 날 무렵 어느덧 새벽이다.

이윽고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노인장의 덕택으로 이제 나는 얼어서 죽을 턱이 없다. 인자하신 할아버님이 아니었더라면 그날 밤에 나는 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님의 이야기가 재미가 나고 긴 탓으로 그날 밤을 쉽게 넘길 수가 있었다.


잠시 후 노인장은 밖으로 나간다.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일찍이 나가는지 모른다. 주인 없는 방에 나 혼자 있기가 멋쩍어서 나도 곧바로 노인장의 뒤를 따라 나왔다. 아직은 바깥이 어두컴컴하다. 노인장은 나가기가 바쁘게 커다란 아궁이에 장작불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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