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일탈 8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8


신산과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하나 부엌하나, 집은 약간 작은 집이다. 그러나 세간을 두루 살펴볼 때에는 어딘가 모르게 짭짤한 느낌을 주었다. 어제 성산댁과는 판이하다. 그 나름대로는 오붓한 살림을 하는 듯싶다. 신산의 처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는 모양이다. 그릇 소리가 딸각딸각 났다.


나는 그때를 틈타 신산에게 내가 찾아간 연유를 말하였다. 고향에서 일어난 일들과 부산까지 돈을 벌러 왔다는 말들을 일일이 다 한 뒤 오늘이라도 일거리가 있으면 일을 하게끔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신산의 처는 내가 한 번도 본일이 없다. 그러니만큼 우리 단둘이 있을 때에 모든 얘기를 다한 것이다. 그러자 신산은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두르냐 이렇게 넓은 부산 땅에 일거리야 없을라고 그것은 걱정 마라. 오늘 당장이라도 나가면 일은 천지다. 하지만, 모처럼 왔으니 하루쯤 쉬어서 하면 안 되나." 하였다.


신산이가 내 형편을 알 턱이 없다. 설사 안다 손치더라도 인정상 신산의 말이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일이 없으면 몰라도 오늘날에 일이 있는 이상 내 형편으로서는 놀 수가 없다. 신산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나도 오늘 자네와 같이 가도록 해주게 하며 거듭거듭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하려무나. 이리하여 나는 그날 신산과 같이 당장 일을 하러 갈 수가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죽을 줄만 알았던 내가 그렇게 쉽사리 일을 할 수가 있을 줄이야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꿈같은 일이다.


아침밥을 먹은 뒤 신산과 나는 제일부두로 보고 걸었다. 이 날도 이른 아침부터 전철, 자동차 소리가 요란스럽다. 어제는 사람을 찾으려고 정신없이 이 길로 걸어갔지만, 오늘은 친구인 신산과 일을 하려고 이 길로 걸어간다. 이런 것을 가리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한다. 대합실에서 역원에 쫓겨날 그때와 지금 이때를 비교한다면 쥐구멍에 볕이 든 셈이 아니고 무언가.


신산은 앞을 서고 나는 뒤에 서서 걸었다. 일을 할 장소는 부관연락선이 닿는 제일부두이다. 그 제일부두는 부산항에서는 제일 화려한 곳, 복잡한 곳이다.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부두 눈물에 부두이기도 하다.


신산과 같이 제일 부두에 이르니 하마 벌써 많은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와글와글 한다. 그러나 아직 작업을 할 시간은 멀었다. 그래서 신산과 나는 잠시 선창을 한 바퀴 돌아다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곤고마루”(연락선 **곤고마루(金剛丸)**는 일제 강점기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던 관부연락선 중 하나)라는 거대한 연락선이다. 그 연락선은 자그마치 팔천 톤이 된다고 했다. 팔천 톤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잘 알 수가 없지만 보기부터가 어마어마하다. 촌뜨기 내가 보기에는 태산과 같이 보였다.


신산은 나를 돌아다보며 이렇게 큰 배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큰 배는커녕 작은 배도 직접 곁에 가서 구경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배의 길이는 일백오십 미터 넓이는 삼십 미터라고 신산은 말했다. 또 그 연락선 안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탈 수가 있고, 일백오십 트럭의 짐을 싣는다고 덧붙여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물들이 그 연락선에 실려서 일본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하루에 두 번씩 왕래를 하고 있다. 우리 민족들에게는 그놈의 적선 때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구경한 뒤 신산과 나는 선창을 구경했다. 보는 것마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선창 밑을 들여다보니 그 제일부두 모두는 육지가 아닌 물 위에다 집을 지은 것이다. 그 물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수중에 쇠기둥을 세워 그렇게 넓은 선창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게 되자 일본놈들의 재주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 넓은 선창 밑은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그 선창 위에는 많은 농산물 기계류 등이 적재되어 있었다. 귀신도 측량치 못할 일본놈들의 재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