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일탈 9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9


선창과 연락선을 구경한 다음 나는 우리의 선조들의 무능함을 증오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놈들에게 나라를 빼앗겨도 싸다는 느낌도 들었다. 기다란 도포자락으로 길거리를 쓸다시피 온몸을 휘휘 내두르며 양반이라는 하나의 권력으로 농민들의 등이나 처먹는 조잡한 인간들. 그래서 결국에 가서는 나라까지 팔아먹는 그러한 작자들.


그러한 인간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하루라도 일찍이 망한 것이 다행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 선창 위에 쌓여 있는 수만의 쌀가마들이 우리 농민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쌀이 아닌가.


그것을 왜놈들이 실어가는데도 아직도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작자가 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하는 것이다.


팔천 톤짜리 배를 만들고 바다 위에 집을 짓는 그러한 시절에 우리의 위정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 말이다. 그 선창을 구경하고 나니 왜놈들에 대한 증오감 보다가 무능한 우리의 위정자들에게 욕을 하고 싶었다.


잠시 후 어디서 호각소리가 났다. 그 호각소리는 일을 시작한다는 호각 신호라고 신산은 말했다. 그래서 우리도 호각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노무실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신산도 나도 노무실 앞에 가서 섰다. 젊은 사람이 한 명 나와 이름을 부른다. 그가 들고 있는 명부에는 지정된 인부의 명부인지라 신입자 우리들의 이름이 실려 있을 턱이 없다. 호명을 다한 뒤에 보니 이름을 부르지 않은 사람은 불과 십여 명에 지나지를 않는다.


나는 걱정이다. 더 이상 사람을 쓰지 않는다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보고만 있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호명을 하던 그 젊은 사람은 오늘은 일거리가 적어서 더 이상 사람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또 하루 더 굶을 일을 생각하니 두 눈이 캄캄하다. 그래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신산이가 그 사람에게 말을 했다. "이 사람은 우리 고향 사람이요, 그러니 내일은 그만두더라도 오늘만은 시켜 주시요."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는 "김형의 고향 사람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구먼," 하고 내게 일을 하라고 말했다. 참으로 만 분 다행한 일이다. 일을 하는데도 이름이 없으면 못할 뻔했다. 신산의 덕으로 나는 다행하게도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잠시 후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부두 작업이란 여느 작업과는 달리 일하는 장소가 각각 다르고 일등 일꾼, 이등 일꾼, 삼등 일꾼의 등급이 따로 정해져 있다.


처음으로 들어간 나는 삼등 일꾼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면 노임도 등급제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신산은 거기에서도 일등 일꾼이었다. 수백 명 가운데 일등 일꾼은 십여 명에 불과하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다. 삼등 일꾼인 나에게는 하루 종일 쌀가마를 메고 다니는 그러한 일이다. 한데 그것이 한 두 가마라면 견딜 수가 있겠는데 하루 온종일 그것을 멘다는 것은 나에게는 여간 무리가 아니다. 성숙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열일곱 살짜리 나로서는 난지난사라고 할 수가 있다. 아무리 힘이 든다고 해도 참고 견디어야만 한다. 신산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하루해만은 넘겨야만 한다. 이렇게 모진 맘을 먹고 나는 일에 임하였다.


그런데, 그 일 하는 장소가 평지가 아닌 가파른 길이다. 길이라고도 할 수가 없다. 연락선을 타고 올라가는 외나무다리이다. 그 외나무다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한 발 잘못 헛디디게 되면 쌀가마와 같이 물에 떨어져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평지에서 하는 일과는 달리 심적으로부터 힘이 든다. 그러므로 서너 번 메고 나니 온몸이 흠뻑 젖었다. 두 다리도 뻐근하다. 그런 일이 계속된다면 하루해를 넘기지 전에 쓰러질 것 같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만일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만둔다면 나는 내일 당장 귀향을 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갈 기차비조차도 신산에게 빌려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이십여 차례를 다녔다. 이제는 죽는다고 하더라도 다시 더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용기뿐만 아니다. 기운도 빠질 대로 빠져 굴신을 하기조차도 싫다. 그래서 나는 참다가 견디다가 못하여 한 꾀를 내어 누군가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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