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일탈 10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0


그러자 그는 “이 양반 보소 여기에 화장실이 어디 있소. 저 선창 밑에 가면 모두가 화장실인 걸” 하였다. 해서 나는 그가 말하는 대로 선창 밑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두컴컴한 선창 밑인지라 남의 눈을 피해서 볼 일을 보기에는 꼭 안성맞춤일 것만 같았다. 선창 밑 깊숙이 들어가 보니 그 선창 밑에는 볼 일을 보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제야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넓적한 철판 위에 걸터앉았다.


하루 해를 넘기기 위해서는, 아니 남의 눈을 기만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 좋은 곳이 없을 듯싶다. 바닷물이 출렁출렁, 고기 떼들이 놀고 있는 화장실 그곳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선창 밑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곳인지라 누가 누구인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보니 게 중에 몇몇 사람은 아예 허리띠도 풀지 않고 그냥 쉬는 자세로 쇠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얼른 보아도 그들은 나처럼 신입자요 일을 배겨내지 못하여 피신을 한 것만은 틀림이 없는 듯하였다.


어떤 사람은 옹문이를 까고 앉아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도 한 시간이 넘도록 그곳에 앉아 있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거기서 항상 일을 하는 전문가들은 아직도 쉬지 않고 그냥 항상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거짓말 같이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데기를 잘하는 몇몇 사람들은 한꺼번에 쌀 두 가마씩 메고 다닌다. 그래도 그들은 거짓말 같이 훨훨 날아다닌다. 그런 사람들에 비유하면 신입자 우리들은 반품을 받아도 감사히 생각을 해야만 될 것 같다. 기술과 함을 자랑을 할 때는 한꺼번에 쌀 세 가마를 메고 쌀가마에 손을 대지 않고 사뿐사뿐 걷는 이도 있었다.


신기하다기 보다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쌀 세 가마라면 황소에 싣는데도 그다지 수월치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이 그와 같은 중량을 메고 간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정도이다. 몸체가 남달리 크고 건강체로 보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키는 작은 편에 속하고 몸체는 보통이다. 그것을 보면 가데기라는 것도 요령과 기술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는 한 가마를 메고도 쩔쩔매는 판국인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힘이 들어 참을 수가 없을 때는 거짓 화장실에 수도 없이 다녔다. 양심에 가책을 받을 만큼 꾀를 부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하루해를 넘겨야만 한다. 나를 고향사람이라고 수진씨가 그 감독자에게 얼마나 많은 부탁을 하였는가. 그 하나만 보더라도 수진씨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다. 헛 변소에 수도 없이 드나드는 것이 양심에 가책은 되지만 그렇게라도 나는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리하여 억지로 하루해를 넘겼다.


돈 나오는 구멍이 죽을 구멍과 같다는 옛말이 하나도 거짓이 아니다. 일이 끝나자 사람들은 노무실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날 하루 품삯을 받기 위해서이다. 품삯을 찾는데도 순서대로 이름을 불러 찾는다. 그러므로 신입자 우리들은 맨 끝판에 찾아야만 한다. 먼저 품삯을 찾은 신산은 내게로 달려와서 “그래, 해보니까 어때? 해볼 만 해”하고 묻는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었다. “그럴 거야, 처음으로 하게 되면 누구나 다 그렇지. 그래도 오늘 하루 견디는 것 보니 용한데 그래.” 하고 신산은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을 한다.


맨 끝판에 가서 나도 그날의 품삯을 찾았다. 일 원짜리 다섯 개, 오원을 받았다. 나는 눈이 번쩍 떠졌다. 하루 품삯이 오원이라니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이다. 그 당시 농촌에서 하루 일을 하면 오십 전 밖에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날 내가 하루 번 품삯은 농촌의 열 사람 분이 된다. 일은 고되다고는 하지만 그 품삯을 보아서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오원을 받아 든 나는 벼락부자라도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하다. 그 돈만 있으면 이제는 걱정이 없다. 하숙집 같은 곳에 주인을 정한다면 열흘은 놀고먹어도 되니까 말이다. 그 돈을 받아 들고 신산과 같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날 내가 겪은 얘기를 다했다. “나는 아직 힘에 부치어 그와 같은 중노동은 못하겠더구만. 오늘 자네 덕분으로 차비를 벌었으니 이제는 집으로 올라가야지.”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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