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소풍이었던가 1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


사실 나는 개가 잘못을 하여도 아내에게 입다툼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가 모른다고 자식들이 그 어머님을 바보취급을 하는 것은 아주 잘못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머니가 나를 낳아 준 사람이니 바보건 천치건 그 어머님은 뱃속에서 나를 열 달을 키워왔고 또 몇 년간은 오줌똥을 다 치워주고, 또 더운 날 추운 날 가리지 않고 나를 등에 업고 키워준 어머님이시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인간들은 어머님의 그와 같은 고생을 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자식을 열 키우는 것 보다가 풀뿌리 죽을 먹고살던 그 일제 강점기 시절 전후 시절에 자식 하나 키우는 것이 훨씬 더 힘이 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자인 나 같은 인간은 두어 번 실패를 한 바람에 미친 사람 모양 살아왔지만 내 처는 정말로 당신의 한평생을 자식들을 위하여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냐 하면 내 만약 먼저 죽거든 너희들 어머님이 어떻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미친바람에 너희 어머니는 남의 집에 가서 블록 찍는 운반도 하였고 또 내가 형무소에서 재판을 받던 그때에는 남대문 시장에 가서 냉면장사도 하였으며, 함백선에 잠시 있을 때는 남의 집에 가서 감자밭을 매 주고 품을 팔기도 하였고, 또 고향에 있을 때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아이를 등에 업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일 년 동안이나 화장품 장사도 하였다.

이뿐이 아니라 우리 집에 시집을 와서는 나의 형수씨에게 기막힌 시집살이를 살았다. 그렇게 할 동안 나는 서울 어디서 무엇을 하였나 하면 나도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일을 해 보았으나 휴전 직후인지라 내가 먹고 살 밥값 벌기도 힘이 들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 우리 노장자들은 하루 일을 하면 삼일 밥값도 잘 되지 않아다. 그러함으로 비가 자주 오는 여름철에는 밥값을 빚지는 사람이 많았다.

자기 식구들과 같이 사는 사람들은 매일 같이 죽었다. 그러한 세상을 살아왔기에 내 처는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고생을 면하게 되니 내 동생이 찾아와서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내 신세를 망치게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돈을 벌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 칠십이 넘었고 또한 심한 해소 때문에 걸음조차도 잘 걷지 못하니 이제는 죽은 신세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죽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다. 내 자식들은 나 같은 것을 아비라고 생각을 하고 다달이 용돈도 많이 주지만 이제는 어인 일인지 하루라도 빨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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