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자서전 마무리 편
수많은 추억들과 마무리
나는 열일곱 살 때에 명심보감의 "백행지본에 인지위상"이라는 말을 선생님에게 배우고부터는 여간 성이 나는 일이 있어도 언제나 꾹 참았다. 그러므로 좀처럼 남과 싸우지를 않는다. 그러나 나는 성질이 더러워서 내 마음이 심히 괴로우면 목숨을 걸어놓고 남과 시비를 하는 성질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서울시청 기술주임에게 내가 욕을 했다고 하여 무죄를 나올 것을 명예훼손죄로 이 년간 집행유예를 받았다. 나는 참으로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욱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경우에 틀린 일은 거의 하지를 않았다. 그러기 때문에 명일시립 노인정에서는 내 몸이 아파서 다니지도 잘 못하는데, 나를 노인정 회장을 두 번이나 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일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틀린 짓을 하지 않았지만 내 가정에 대해서 한 일들은 처의 고집에 지지 않을라고 또는 동생 때문에 거지가 된 분함으로 내가 우리 집 사람한테는 많은 죄를 지었다.
그러나 나는 고의적으로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내가 한 일을 이 책자 위에 다 쓰지 못한 기구만장한 일이 다 있다.
지나간 일이기는 하나 그 잘못한 일을 내 처에게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생각에 내가 그렇게 하면 내 처의 마음은 다만 조금씩이라도 변할 줄 알았는데 전연 그렇지가 않았다.
남편이 남의 여인을 알게 되면 아무리 무식하여도 질투 같은 언질은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말은 없고 항상 돈타령이다. 허나 이제 와서 내가 많이 생각을 해 보니 처는 진정 효부다. 시부모님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다. 그러니 내가 먼저 죽더라도 너희들의 모는 효부이니 그가 죽은 뒤라도 효부라고 생각을 하여라. 배우지를 못해서 말을 잘할 줄을 몰라서 다른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본심만은 선량하기 이를 데 없는 여인이다.
그리고 4남 2녀의 자식 중 둘째 여식은 어려서 일찍 세상을 떴지만, 남은 자식들은 그래도 모두 남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잘 살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다행이다. 다 기억은 할 수 없지만 잠시 들렀다 떠나는 것이 바로 나들이 같은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내가 살아갈 날도 그리 오래 남지 않은 듯하다. 십수 년을 정리해 온 이 글도 여기서 마감하고자 한다.
[내가 쓴 글은 받침이 제대로 안 된 것은 물론이요, 말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거의 반 이상이 된다. 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틀린 것은 알아서 읽기를 바람]
[내가 죽거든 땅 속에 묻지를 말아라
동해에 던져다오
나의 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