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3
두 개에 일전씩 하는 빵을 한 개에 일전씩 받게 된다면 그것은 정확한 곱장사이다. 일원어치를 팔면 오십 전이 남고, 십원어치를 팔면 오원이 남는 그 보다가 더 소득이 많은 장사가 어디에 있나. 밤이 늦도록 빵장사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꼭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중국집을 찾아가서 빵을 한 상자 샀다. 그 한 상자에는 이백 개가 들어있다. 그 한 상자를 팔면 오십 전이 남는다. 그렇다면 하루 열 상자, 아니 다섯 상자만 팔아도 오원은 벌 수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 빵상자를 둘러메고 초량역전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인지라 거기라면 꼭 될 것만 같았다. 광장에 빵 통을 내려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공장에서 금방 가지고 나온 빵인지라 빵상자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난다. 그리고 백설같이 하얀 것이 먹음직스럽다. 금방 한 삼십여 개가 팔린다. 빵을 사는 사람들은 대개가 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다.
잠시 한 순간 그렇게 팔리더니만 그다음은 손님이 아주 닥 끊어진다. 그것은 기차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열상자는 팔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점심때가 가까워 오는데도 빵 한 상자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게 팔게 되면 하루에 한 상자 팔기도 바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미 틀린 것이라 생각하고 배도 고픈김에 한 개씩 빵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회오리바람이 미친 듯 불어 광장에 있던 석탄 먼지가 날렸다. 빵상자를 덮었던 신문지까지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다. 통 안에 들어 있는 빵은 아주 먼지투성이가 되었다. 석탄 먼지가 날아와 덮여 인도인의 얼굴과 같다. 한 개 집어서 입에 넣어보니 모래를 씹는 것처럼 와작거린다. 겉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속속대로 먼지투성이다. 이제는 단 한 개도 팔 수가 없다. 해서 나는 빵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숙집 주인은 내 말을 듣고 웃는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포장은 있어야 하고 첫째로는 장소를 잘 잡아야만 된다고 했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장사를 시작했던 나는 그날 하루에 일 원을 손해 보았다.
역시 장사를 하는 것도 팔자에 없고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일을 해서는 돈을 벌 수가 있었는데 장사를 해보니 먼저 나 자신부터가 초라해 보이고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괜히 부끄러운 기가 들었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나는 장사를 할 적격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객지생활 삼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또다시 보리죽, 나물 갱죽으로 연명을 하여야만 하였다. 민물에 살던 고기가 바다에 가서 살 수가 없듯이 나와 같은 촌뜨기가 도회지에 나가서 살려고 생각한 것이 본시 잘못이다. 송충이가 갈잎을 먹고살 수가 없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죽을 먹고살 사람은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그 말이다.
초량역 대합실에서 쫓겨나서 방황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모골이 송연하다. 죽 그릇이 이마에 주름살을 늘게 한데도 부산항 제1부두에서 거짓 볼일을 보는 것 보다가는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그러므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조부모 편모슬하에서 도리를 배우고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며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를 누리면서 살리라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때까지 배우지 못했던 글을 지금이라도 한 번 배워보려고 생각을 했다. 학교 글은 배울 구사 없겠지만 천자책이라도 독학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토가 달린 천자책을 한 권 샀다. 독학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하루에 한 자씩이라도 쓰고 읽기로 했다. 그러나 독학을 하다가 보니 글자만 무슨 자 무슨 자라고 읽고 눈에 익힐 따름이요 그 글의 뜻은 전연 모르고 넘어갔다. 하지만 글자를 안다는 것만 하여도 난생 처음 글을 배우다가 보니 그저 기쁘기만 하였다. 글자만 배우다가 보니 천자를 배우는데도 그다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한겨울 석 달 동안에 그 글을 다 배웠다. 그로부터 나는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보지 못했던 신문이나 공문서 따위는 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