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6
언제 어느 시대에 지은 절인 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절의 모습을 보아서는 꽤나 오래된 절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초라하리만큼 낡아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 절은 신라시대 어느 왕이 지은 사찰이라고도 하고, 백제 시대에 지은 절이라고도 했다. 어쨌건 비바람 속에 수천 년을 내려온 절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대웅전 법당채는 이미 다 허물어져 있었다. 그리고 몇 채의 집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그 지붕 위에 얹혀있는 기왓장들이 죄다 낡을 대로 낡아 기왓장 사이사이에는 풀들이 우거져 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다. 절의 마당 한가운데 서있는 작은 돌탑마저도 그 전체에 청태(푸른색 또는 녹색의 얇은 이끼류)가 나붙어 있고 주위 담장은 거의 다 허물어져 금방 패사가 될 듯싶어 보였다. 그것도 왜놈들의 세상이 아니었으면 그렇게까지 될 리가 만무하다.
그를 보고 있을 즈음 어디선가 “어이, 미스하라.”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에 정신을 쏟고 있던 나는 그리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이 덕실이었다. 그도 나처럼 훈련을 받으러 가는 길이다. 전자부터 그와 나와는 매일같이 훈련을 같이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묻지 않아도 그가 어디로 간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었다.
헐떡이며 뛰어온 덕실은 “야, 나는 혼자 갈까 봐 걱정을 했더니만.” 하고 반가운 듯 싱글벙글한다. 그리고 그는 웃옷을 벗어 어깨에 둘러메었다. “그래 너도 오늘 가게 되었나?”하고 나는 대꾸를 했다. 산골에 사는 덕실이기는 하나 그는 부잣집 아들이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쾌활한 기분으로 서글서글하게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는 아주 일자 무식꾼이다. 부잣집 아들이면서도 그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언행들이 그다지 매끄럽지가 못하고 거친 편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참을성과 이해력이 많다. 배우지는 못했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충분하다.
잠시 후 이덕실과 나는 인각사 절 앞을 떠났다. 혼자서 털레털레 걸으면서 향리를 돌아보던 그때 보다가는 다소의 안심이 된다. “야, 이 훈련이 끝나면 우리는 곧바로 전쟁터로 갈기제?”, “야, 너나 나나 마찬가지지. 알게 뭐람.”, “이놈아들이 지금 하는 것을 봐서는 훈련이 끝이 나도 집에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 “그럴런지도 모르지.”
궁금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애남소 병풍암을 지나 둥딩이 마을 앞을 거쳐 질게넘의 마루턱에 올라섰다. 그곳은 아주 무인지경이다. 울창한 수목들이 온산을 덮고 있다. 길 옆 작은 언덕 밑에는 산딸기가 망우리 져 있다. 옛날에는 그 고갯마루 턱을 남자면은 열사람이 되어야만 그 고개를 넘었다는 고개이다. 옛날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그 숲 속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말들이 횡행한다.
덕실과 나는 가던 발길을 멈추고 그 고갯마루 턱에서 잠시 쉬었다. 그리고 또 한 대의 담배를 피웠다. 그 고갯마루턱에서는 훈련소가 그다지 멀지가 않다. 마루턱에서 내려다보면 빤히 연병장이 보인다. 거리로 따진다면 오리도 채 못된다. 젊은 우리들이 뛰어간다면 십 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덕실과 나는 태연스럽게 앉아 잡담을 늘어놓았다.
구름이 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잡담을 하면서도 덕실이의 입가에서는 간간이 긴 한숨이 흘러나오곤 한다. 그리고 몹시 우울한 표정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가족들의 작별이 너무나도 허전 섭섭하다.
나는 얼마간 가는 구름을 쳐다보았다. 오월의 망아지 구름이 북쪽으로만 흘러간다. 새소리 만이 들려오는 질게넘의 고개 마루턱에는 잠시 적막이 흐른다.
창송이 울창한곳에 망국소회 가슴안고
흰구름 가는길따라 내눈마져 뒤따르네
애끊는 장부의심정 그누구가 알아주랴
자귀때 구슬피우니 이가슴만 더욱답답
잠시 후 우리 두 사람은 연병장을 바라다보며 고개를 떠났다. 이제부터는 연병장까지 줄곧 내리막길이다. 그러나 해는 정오가 가까운 듯하였다. 우리 너무 많이 앉아 놀았구먼, 빨리 가야 되겠는 걸 하고 덕실은 조바심이 난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앞에 서서 걷는다. 우리가 훈련소에 도착해야 할 시간은 열두 시이다. 그러므로 빨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도 덕실의 뒤를 따라 부지런하게 걸었다. 얼마 후 덕실과 나는 연병장 정문 앞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