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의 시기까지 5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5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담배연기. 나 또한 그 연기와 무엇이 다르랴. 평범한 생활 속에 명대로 살다가 죽는데도 인생은 초로와 같다고 허무를 탄했거늘 하물며 전쟁터로 가고 있는 몸인데, 그 연기와 다를 바가 아무것도 없다.


담배를 피우고 있을 즈음 경달이가 오고 있다. 그는 들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손에 삽을 들고 있었다. 나는 반가이 그를 맞았다. 전자와 같이 농담 비슷하게 어른이 앉아 있으면 인사를 해야지 하고 그를 대했다. 그러자 그 역시도 “야, 박서방. 니 어딜가노? 또 부산에 가는 것은 아이가?”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나와 절친한 친구이다. 그러나 그 역시도 내가 훈련을 받으러 간다는 것은 전연 모른다. 그는 나보다가 나이가 한살이 더 많다. 그리고 그는 조실부모하고 지금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 어릴 때도 그의 형 밑에서 불선가난으로 자랐다. 그러므로 그는 키가 작은 편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제일 가난하게 살아온 그였다. 그리고 경달은 나와 앞뒷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들의 사이는 더욱 가깝다. 조석으로 만나서 대화를 하고 어디 놀러를 갈 때도 서로 간에 불러서 같이 가고 하던 그였기에 우리 두 사람은 다투는 일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내가 훈련을 받으러 간다는 것만은 경달도 까맣게 모른다. 그것은 왜놈들의 수단에 의하여 꾸며진 일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왜놈들의 독재가 얼마나 악랄하였다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더니만 경달은 내게 수상한 점을 발견한 듯이 “봐, 박서방, 자네 이 보따리를 보니까 참말로 어데 가는 것이로구먼?” 하고 물었다.


그때서야 나도 사실대로 대답을 하였다. “야, 나는 영장을 받고 훈련을 하러 가는 길이야.”, “머, 훈련이라고? 그렇다면 왜 말하지를 않았지? 자네 처갓집에도 속이고 가는 거야? 내가 어제저녁에 자네 처갓집에 놀러를 갔는데도 그런 말은 전연 없던데 그래.” 하고 묻는다. 사실 처갓집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히 알게 되면 처갓집까지 마음이 숭숭할 것이 아닌가?


내 말을 들은 경달은 “아이고, 이놈의 세상. 어쩔라고 이러는지.” 하면서 긴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 경달은 “설마, 이 전쟁터에야 가겠는가? 자네 훈련이 끝이 나기도 전에 일본놈들은 망할 거야. 민심이 천심이라고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말을 하거든.”


이 말인즉 친구의 의리상 한 번 해보는 위로의 말인 것이다. 이십 년간을 같이 뛰놀고 자라온 우리였기에 경달은 서슴지 않고 일본놈들이 망할 거라는 말도 한다. 친일파가 경달의 말을 들었다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사형감이다. 그러한 왜놈시대에 경달이 그와 같은 언행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은 그와 나 사이에는 그만큼 믿을 수 있고 친하다는 그러한 뜻도 된다.


담배를 피우면서 서로 간에 잡담을 늘어놓는 순간 시간은 흘러 어느덧 새끼 나절이 가까운 듯싶다. 해서 나는 경달과 작별을 하고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오전에 팔 킬로쯤 더 가야만 하였기 때문이다.


친구를 작별하고 나는 솔미기 골짜기로 발길을 옮겨갔다. 하지 때가 되어야 해 구경을 할 수가 있는 솔미기 골짜기에는 오월 달이 되었어도 입춘지절을 연상케 하리만큼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거기서 얼마 더 가지 않으면 바람구멍이 있다. 바람구멍이란 말 그대로 바람이 나오는 구멍이다. 이 희귀한 바람구멍에는 여름철이 되어야만이 얼음덩이를 볼 수가 있고 그 반대로 겨울철이 되면 따스한 훈기가 나오는 구멍이다. 그래서 그런지 솔미기 산골에는 오월달이 되어도 나뭇잎이 활짝 피지 못하고 그와 같이 싸늘하다.


솔모퉁이를 돌아갔다. 이제는 고향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경달의 모습도 사라졌다. 맑게 흘러내리는 고로천을 내려다보며 음습한 깊은 산골짜기로 발길을 옮겨갔다.


바람구멍 앞을 지나 인각사 절 앞에 이르렀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절 앞에서 잠시 위였다. 그 절 앞에는 수백 년쯤 되어 보이는 늙은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니 땀이 날 정도로 훈훈하다. 잠시 소나무 부리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솔미기 골짜기와는 아주 딴판으로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담배를 한 대 말아 불을 붙여 물었다. 그리고 인각사(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산(華山)에 위치한 신라 시대 창건된 고찰)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축축 늘어진 소나무 가지 사이로 절의 모습이 어슴프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