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의 시기까지 4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4


만주땅으로 도주를 하려고 생각을 하고 나의 친구인 삼방우에게 편지를 해 보았다. 될 수 있으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그러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삼방우에게 보낸 편지는 아주 무소식이다. 편지가 가는 도중에 일본놈들이 그 내용을 알고 가로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가부간 답장이 올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왜놈들의 영대로 입대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일본놈들이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하는 세상, 그 시절에 우리 민족은 나라의 주권도 민족의 자유도 완전히 다 박탈당하고 심지어는 우리들의 성명 삼자까지도 없을 그때이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가지고 사용하지 못하는 세상 말하면 무엇하리. 한 마디로 말을 하면 불쌍한 민족이요 처참한 세상이었다. 그와 같은 어수선한 세상에 왜군 의무병 일기생으로 끌려가게 된 나이고 보니 더더구나 목멘 송아지 꼴이 될 수밖에는. 나는 그래도 만주땅에 가서 사는 삼방우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는데 그 마저도 허사가 되고 보니 이제는 아무런 발버둥도 여망도 없다.


음역 오월 하순 훈련을 받기 위하여 약간의 소지품을 가지고 집을 떠나야만 했다. 의무병이라서 그런지 전자의 지원병과는 달리 이웃 사람도 모르게 출병을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얼마 전에 소위 지원병이라는 명칭을 붙인 사람들이 출병을 할 때에는 민중들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한 고을이 떠들썩하게 야단법석을 치며 전송을 하였다.


그러던 것이 중일전쟁, 대동아 전쟁의 전화가 점점 악화가 됨에 따라 의무병이라고 명칭을 붙인 뒤 쥐도 새도 모르게 끌어다가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얼마나 뻔뻔스러운 일본놈들인가. 저들의 전쟁터에 남의 나라 백성을 의무병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 말이다. 그 하나만 보더라도 전쟁은 그만큼 위기에 처해있다는 일발의 신호인 것이기도 하다.


가족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사립문전을 나섰다. 그러자 칠순이 넘으신 우리 할머님은 버선발로 뛰쳐나와 내 등을 어루만지시면서 “아이, 그 몹쓸 놈의 자식들. 우리와 무슨 원수가 졌기에 이러는고” 하시면서 노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머님 역시도 울었다. 할아버님은 방문을 열어놓고 남산을 바라다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더군다나 엊그제 내게로 시집을 온 마누라는 어안이 막힌다는 듯이 넋 잃은 사람 모양 입을 꼭 다문체 부엌문 기둥에 기대서서 긴 한숨과 함께 양뺨에 구슬이 맺어져 있었다.


그 시절에 그와 같은 일들은 비단 우리 집 만이 겪는 일이 아니다. 그와 같은 관경들은 우리나라 방방곡곡 어디에서나 볼 수가 있는 일이다. 난생 처음 가족들의 그와 같은 모습을 본 나는 치가 떨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눈에서도 눈물이 퍽 쏟아졌다. 일본놈들을 다 잡아먹는데도 그 노한은 남을 것만 같았다. 나도 할머님의 손을 꼭 잡은 체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다.


내 나라를 위해서 전쟁터에 간다 해도 그다지 기쁜 일은 될 수가 없다. 하물며 남의 나라, 그것도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집어삼킨 일본놈들에게 끌려가서 군사 훈련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피통이 터질 일이 아니고 그 무엇인가?


얼마 후 나는 할머님의 손을 놓고 사립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물은 한없이 쏟아진다. 손등으로 스쳐도 스쳐도 한 없이 흐른다. 가족들의 그러한 모습들을 본 이상 목석간장이 아니고서는 나오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에게까지 갔다가 오겠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 것이다.


큰 둑 나들에 이르렀다. 들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으러 간다는 것은 전연 모른다. 내가 가는 것을 본데도 사람들은 전과같이 교육훈련을 하러 가는 줄만 알 뿐 의무병으로 간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저녁에 영장을 받고 아침에 떠나니까 그럴 수밖에는 없다.


나는 가던 발길을 멈추고 길옆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상긋한 초여름 풀냄새가 추억을 더듬게 한다. 들판에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은 그날따라 왜인지 가엽게만 느껴진다. 입가에 맴도는 담배 연기를 후우하고 창공으로 내어 뿜었다. 내어 뿜은 담배 연기는 무슨 미련이라도 남은 듯이 허허한 창공을 맴돌다가 어디로 인가 사라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