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의 시기까지 2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2


다시 말하자면 악질적인 일본놈들이 어느 때 가서 망해도 망할 것이라는 그러한 뜻도 내포되어 있다. 명심보감이라는 책은 그 시초부터가 부드럽다. 하루 이틀 배우면 배울수록 그 진미를 더욱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배운다는 그 쾌감보다 그 글의 뜻이 더욱 아름답다. 구절구절마다 그 묘미는 인생 삼의 그 장단을 말해주는 듯하다. 스승이신 연기어른께서도 혹 구절에 가서는 당신의 무릎을 탁 치며 큰 소리로 읊어 갔다. 공, 맹자의 말씀이라서가 아니라 그 어느 한 구절을 보아도 인간의 심리를 뚫어보는 듯하였다.


이 책이야말로 불학무식한 나 같은 사람이 배워야 한다고 나는 절실히 느꼈다. 글자는 그다지 어렵지가 않다. 대개가 다 천자책에 있는 글자요, 어쩌다가 모르는 글자가 있을 뿐이다. 며칠간 배워보니 인산어른이 겁주는 말과는 달리 나는 신이 났다. 하루 저녁도 빠지지 않고 한 달을 꼬박 배웠다. 그런 뒤 나는 한 달 동안 배운 글을 보지도 않고 암송하였다. 그러자 그 방 안에 앉아 노는 노인네들은 저럴 수가 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가리켜 천재라고 하였다. 어렵다고 겁을 주던 인산어른도 부전자전이라고 하더니만 너도 너의 아버님을 닮은 모양이구나 했다.


자화자찬이 아니다. 두 달이 지나갈 무렵에는 명심보감 성심편을 배우고 있었다. 그때 가서는 스승에게 배우지 않아도 나 혼자 대충 그 글의 뜻을 알고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날 저녁에는 스승에게 배우지 않고 나 혼자서 읽다가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그럴 때면 글을 가르치던 연기어른께서도 보람을 느낀 듯 희색이 만면하다. 그러므로 해서 나 역시도 의기가 양양했다.


천재라는 소문은 금방 온 마을에 쫙 퍼졌다. 우리 글 언문조차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나를 대함이 전자와는 아주 다르다. 나 자신도 이제는 글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가 있었다. 한 해 겨울 석 달 동안에 명심보감 한 권을 다 배웠다. 어디선가 한문이 섞인 편지가 오면 쩔쩔매던 우리 집이었는데 이제는 그 보다가 더한 글이 온대도 누구 입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할아버님도 어머님도 다들 기뻐했다. 그러나, 그때 시절에 한문만 알아서는 안된다. 학교를 가서 산수도 배우고 국사, 지리 같은 것을 알야야만 하는 시대이다. 그렇지 않고는 글을 안다고 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왜놈들의 속국이 되어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다.


해서 나는 명심보감을 배운 뒤에 일본글(가타가나와 히라가나)을 배우기 시작했다. 글자는 금방 배울 수가 있었다. 두 가지 글을 배운다고 해도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일본글은 우리글 언문과는 달리 글자가 적고 큼에 따라 읽음이 다르다. 글자 위에 점이 붙어도 다르고 동그라미가 하나 있어도 아주 다르게 읽어야만 한다.


글자는 쉬우면서도 읽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헌책방에 가서 일본글로 되어 있는 책을 한 권을 샀다. 그 책의 제목은 아메우리(アメウリ)라고 되어 있었다. 그것은 엿장수를 말함이다. 이를테면 어린이가 보는 소설책 따위다. 그러나 그 책의 량은 일백여 장에 가까웠다. 그 한 권의 책만 읽으면 웬만한 말은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책을 구하기는 했으나 남의 나라 말인지라 독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국민하교 아니 그 당시 심상소학교에 다니는 오 학년 짜리 동생(작은 아버지임)에게 그 책을 배우려고 물어보았다. 그는 일본 말을 거의 다 안다. 그러나 동생은 그가 하고 있는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해서 가르쳐 주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내가 자주 묻게 되면 동생은 짜증을 내어 언성을 높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달가량 배우다가 그만 치워버렸다. 창피스럽다. 그런 수모가 없다. 형도 아닌 동생에게 그와 같은 거부를 당할 때에는 눈물이 퍽퍽 쏟아질 때도 있었다. 일본놈의 글을 배워 나중에는 비상천을 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동생에게 수모를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 당장에서 책을 찢어 버렸다.


일본글을 더 이상 배우지 않고 내가 아는 한문에만 다시 정신을 쏟기로 했다. 그러나 세월은 빠르다. 쏜 화살과 같다는 말보다가도 더 빠르다. 어느 사이에 내 나이가 스물한 살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스물한 살이라면 총각으로서는 노총각이다. 그러므로 우리 할아버님은 항상 내 걱정을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