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3
나는 결혼보다가 글을 배우지 못한 것이 마음에 철못이 되어 하나의 한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장가를 드는 것 보다가 글을 배워야 한다는 데만 정신을 다 쏟았다. 그 시절에 우리 마을에는 학교에 가지 못한 사람이 몇 사람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의논을 하여 야학을 하자고 했다. 야학을 하는 데 있어서는 선생을 소학교 졸업반 아이들로 정했다. 그렇게 하게 되면 선생들은 나이가 어리고 글을 배우는 제자들이 오히려 나이가 많다. 그중에 한 두 사람은 그때 벌써 삼십이 넘었다. 그리고 항렬로 따져보아도 선생이 조카뻘이 된다.
어쨌건 우리들은 글을 배우는 것만이 목적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하더라도 성을 내지 않고 순순히 복종을 하기로 했다. 소위 일본어 국어 국민학교 일 학년 책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얼마가지 않아 고로 공립 심상소학교에 다니면서 군사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것이 왈 왜군의무병 소위 일기생이다. 중일 전쟁 이후 지원병이라고 하는 강제병이 있기는 하였으나 의무병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다.
해서 나는 하던 야학을 그만두고 군사훈련을 받으러 다녔다. 집에서 출퇴근을 하였다. 그 훈련생들은 대개가 다 무식꾼이었다. 그러므로 하루에 두 시간씩은 일본어 글을 배우고 세 시간씩은 훈련을 받았다.
그때 훈련을 가르치는 훈교자는 일본인 두 사람, 우리 조선인 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일본어를 배우기에는 조금 빠른 셈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나는 어른들의 강요에 장가를 들게 되었다. 일본 군대에 나가서 죽을까 봐서 그런지 왜 그렇게 어른들은 내 혼사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상대자는 한 마을에서 같이 자란 사람이었다. 그 시절에는 처녀 공출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뿐만 아니라 양가가 다 혼사를 서둘렀다.
이리하여 나는 훈련 도중에 장가를 들게 되었다. 한 마을 혼사인지라 서로 간에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거절을 해보았지만 어른들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에는 장가를 가야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그와 같은 전쟁시대에 더욱이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내가 장가를 든다는 것은 당자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도 들었다.
그로부터 외로운 사람, 고독한 사람이 아니다. 오십여 호가 살고 있는 김녕김씨네들의 집안에는 어느 집 누구네 안방에도 무상출입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처갓집은 그다지 넉넉하지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댁이 김녕김씨네들의 대종손이다. 우리 할아버님이 그 댁을 사돈을 삼은 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종손이라면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양반으로 생각한 할아버님의 독자적인 생각, 손자의 의사는 일체 무시하고 당신의 뜻대로 결정을 한 혼사였기에 나로서는 여러모로 불만이 많았다.
하나 어른들이 정한 일에 거역을 한다면 그것은 불효가 될 뿐만이 아니라 한 마을에 사는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기에 당사자인 나인데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었다.
처갓집 집안이 넓고 고독은 다소 풀렸다고는 하나 첫째 마누라가 너무 작은 것이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그러나 마음씨는 착한 편이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행하는 예의범절도 여자다운 데가 있었다. 그것이 마누라의 장점이다.
일천구백사십삼 년(1943년) 오월 초여름 나는 뜻하지 않게도 일본놈의 군부로부터 정식 군사훈련을 받으라는 소집영장을 받게 되었다. 이 때로 말하면 일본놈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중일 전쟁을 시작한 지 무려 사 년,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한 지 꼭 일 년째 되던 해의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장가를 든 지 한 달도 채 못되어 영장을 받은 것이었다. 영장을 받은 나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내 비록 불학무식하여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남의 나라 군대에 끌려가서 그들이 총알받이가 되어 개죽음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왜 무엇 때문에 일본놈들의 군대에 끌려가서 그들의 총알받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나 하는 것이다.
안중근, 윤봉길이와 같은 의사는 못될지언정 자진출두하여 그들의 전쟁터로 나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멀리 어디로 인가 도주를 할 생각을 가졌다. 일본놈들 때문에 배를 곪고 사는 것만 하여도 그 한이 여산(如山) 커늘 거기다가 내가 묻힐 무덤까지 자초해서 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