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의 시기까지 1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


꼭 석 달만에 천자책을 다 읽었다. 그러므로 혹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천재라고까지 하였다. 육 학년 졸업을 한 학생들이 읽지 못하는 글도 나는 충분히 읽을 수가 있었다. 사이에 간혹 모르는 글자가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추리적으로 거의 읽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 이상 기쁜 일은 없다.


봄이 가고 여름철이 되면 한참 일하는 농번기이다. 그러나 나는 글을 읽고 쓰는 데는 조금도 게을리하지를 않았다. 한 해가 지나가고 겨울철이 돌아왔다. 그 겨울에도 나는 글 배울 생각으로 책을 한 권 샀다. 그 책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판 돈으로 산 것이다. 책은 명심보감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은 내가 무엇을 알아서 산 것이 아니라, 책장수 노인의 말만 듣고 산 것이다.


책 파는 노인장은 이렇게 말을 했다. “요즘 세상은 옛날과 달라 한문을 서열대로 읽어 과거를 보는 것도 아닌 만큼 이 책 한 권만 잘 배우면 인간의 도리와 예의범절을 다 알 수가 있는기라. 이 책이야 말로 이름 그대로 보배의 책이지.”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노인장의 말만 듣고 명심보감을 사 왔다.


그런데 이 책은 천자책과는 달리 글자 보다가는 글의 뜻을 알아야만 한다. 더군다나 토가 달려있지 않은 책인지라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독학은 할 수가 없었다. 글자는 대개가 배운 글자가 많다. 그렇지만 뜻을 모르고는 읽을 수가 없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 날 생각 끝에 글을 아는 노인들을 찾아가서 사정을 할 작정으로 어른들이 많이 모이시는 이웃집 사랑방을 찾아갔다. 그 댁의 택호는 부남댁이다. 그 댁 사랑방에는 언제나 많은 노인들이 모여서 논다. 그래서 나는 그 댁을 찾아간 것이다.


사랑 방문을 열고 사연을 고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에도 그 방안에는 오륙 명의 노인들이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먼저 귀가 어두운 옥산 어른이 물었다. “네가 여기 어인일로 왔노? 할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키드냐?”, “아입니다. 글을 배우려고 았습니다.” “그 참 잘 생각했구먼. 사람은 그저 배워야 하는기라. 우리 집에 태방우는 그렇게 말을 해도 글에는 조금도 뜻이 없거든. 이제는 나도 지쳐서 말도 하지 않는기라.” 하셨다.


“그래, 책은 무슨 책을 배우려고?” 이번에는 인산 어른이 물었다. “명심보감을 가지고 왔습니다.”, “명심보감이라고 네가 언제 글을 배웠기에 그 같은 어려운 걸 배우려고 하는 거야. 글이란 차례차례 읽어야 하는기라. 그래야만 글의 뜻도 쉽게 터득할 수가 있고, 문리가 빨리 트이거든.” 하였다.


사실은 그분의 말씀이 지당하다. 하지만 이십이 가까워 오는 내가 이제 와서 차례차례 글을 배운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사십에서 천자문 한다는 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은 태평성대에 낭만주의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헛소리에 불과할 뿐 칠 세에 천자문을 익고 팔세에 동몽선습을 배우고 아홉, 열 살에 소대학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고 보면 선자는 하도 답답하여 어거지로 한 번 해보는 말일 것이다.


인산어른의 하는 말을 들어보면 선자의 하는 말과 조금도 다른 바가 없다. 나이에 상관하지 말고 동몽선습이라는 책을 잃어야 한다는 그 말이다.


“기왕에 사가지고 온 책이니 한 번 배워보고 안 될 때는 다른 책을 택하지.” 이 말은 연기어른이 하는 말이다. 나는 그 어른의 말이 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서슴지 않고 “예.” 하고 대답을 하였다. 그 방안에서는 연기어른이 제일 선비이시다. 마을에서 두 번째로 글을 많이 아는 그러한 어른이시다. 나는 그날 저녁부터 당장 그 책을 배웠다. 연기어른이 스승이다.


그런데, 첫날 저녁에는 재왈위선자는 하는 한 줄의 글만을 배웠다. 하루 저녁에 더 많은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욕심을 내어서 글을 배우면 안 된다는 연기 어른의 말에 따르기로 하였다. 어쨌건 나는 기쁘다. 그렇게도 소원이었던 글을 배우게 되니 한없이 기쁘다.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그날 저녁에 배운 글을 열 번 백 번 쓰고 읽고 하였다. 보지 않아도 아니 눈을 감고 누워있어도 그날에 배운 글자는 하나 빠짐없이 죄다 뇌리에 떠오른다. 착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서 갚을 것이요, 악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화로서 갚을 것이다 하는 그 첫 구절부터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말인즉 바로 내게 해당되는 말이요,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자선을 권고하는 설명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