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의 시기까지 9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9


그 밥 만으로서는 배가 고파서 훈련을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일본놈 훈교자들은 상부에서 일단 그렇게 정해 놓은 일이라고 하면서 자기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을 했다. 참으로 기탄스러울 일이다. 놀고 있는 스님들의 식량이 하루 서홉 삼작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 젊은 훈련생들에게 그 보다가 더 적은 서홉 밥을 준다니 그것이 어디 말이나 되는가. 아무리 전시요 식량이 모자란다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 훈련생들은 아침식사를 끝마친 뒤에 사무실로 찾아가서 그 밥을 먹고서는 도저히 훈련을 할 수가 없다고 항의를 했다. 악독한 왜놈들 시절에 그와 같은 항의가 있는 것은 이미 목숨을 버리고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왕에 죽을 목숨 항의라도 해보고 죽자하는 그러한 생각에서였다.


처음에는 왜놈들도 놀라는 기색을 띠었다. 상전에게 덤벼드는 것은 저놈들도 처음 겪어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놈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마구잡이 우리들을 몰아칠 수는 없었다. 저놈들이 보기에도 그 밥으로서는 많이 적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항의는 수포로 돌아가고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아침밥을 먹고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우리들은 또다시 훈련에 들어갔다. 맥이 확 풀린다.


“이찌니, 이찌니” 하고 훈련을 받기는 하였으나 다들 맥 빠진 사람 모양 흐느적거린다. 원체 배가 고프니까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그럴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 훈련은 계속되었다. 죽기 전까지는 훈련을 받아야만 하였다. 이틀 삼일이 지나가니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훈련생들은 그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두 눈은 뒷꼭지까지 들어가 있고 행동 모두가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흐느적흐느적하였다. 그러자 혹 사람들은 집으로 편지를 하여 금방 죽게 되었다고 먹을 것을 해가지고 오라고 하는 자도 있었다.


그때 공출 시대에 집인들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식이 죽는다는 편지에는 무관심할 턱이 없다. 내가 굶더라도 자식을 생각하여 떡을 해서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 떡이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하였다. 다 같이 죽을 지경에 처해있는 판국이다. 누구 한 사람은 떡을 먹고 그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그 광경만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 비참함은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한 사람의 떡을 백 수십 명이 나누어 먹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 떡을 먹는 것도 혼자 가서 남몰래 먹는다면 또 모르겠는데 언제나 훈련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그때 틈을 타서 꼭 먹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더욱 환장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체면도 염치도 죄다 망각한 사람들은 그의 떡 먹는 앞에 가서 거지 아닌 거지가 되어 나 좀 나 좀 하고 두 손을 내미는 그 몰골, 뿐이랴 어떤 사람은 그 떡이 먹고파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두 눈에 눈물이 뚝 뚝 떨어져 두 뺨을 흠뻑 적시는 이도 있었다. 부모 잃은 설움을 가리켜 호천망국(**호천망국(胡天亡國)**은 **"오랑캐의 하늘 아래 망한 나라"**라는 뜻으로,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이나 지배로 인해 멸망한 나라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들 하지만 나라 잃은 설움에 비유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밤중에 연병장을 빠져나가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죽을 도적질 해 먹다가 들켜 큰 창피를 당한 적도 있었다. 요즈음 세상 같으면 개를 줘도 먹지 않을 그러한 죽이다.


어느 날 밤 나 역시도 몇몇 동료들과 같이 침실을 빠져나가 남의 수박밭에 들어가서 수박을 따먹은 적이 있었다. 죽을 판국에 이르게 되면 누구나 마찬가지로 염치도 체면도 지킬 수가 없다. 훈련을 시작한 지 이십여 일이 넘어갈 무렵에는 우리 훈련생들의 모습들은 당신의 부모님들이 와 본데도 어느 것이 나의 자식인지 모를 정도로 변모되어 있었다. 눈을 감고 누워있을 때 보면 죽은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어떤 날은 훈련을 하는 도중에 연병장 마당에 쓰러져 졸도를 하는 사람들이 사, 오 명씩 되었다. 입가에 거품을 내어 놓으며 졸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목불인견이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가관이요 기이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도 세월은 쉼 없이 흘렀다. 칠월달이 되었다. 모래가 반쯤 섞인 연병장 위에는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사 훈련은 계속된다. 피골이 상접한 많은 사람들 이제는 얼굴마저 햇볕에 타서 그야말로 인간 같지가 않다. 그러나 일본놈 훈교자들은 살이 쪄서 꼭 돼지와 같았다. 그들 일본놈들은 우리들이 먹을 식량을 착취하여 저녁마다 주지육림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