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1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는 우리들처럼 애매하게 죽어가는 청년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배가 고파서 굶어서 죽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보다가도 일본놈들에게 맞아서 죽는 수가 더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죽음은 병사라고 되어있지 일본놈들이 때려서 죽었다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엄연하게 우리 눈으로 똑똑하게 보았는데도 일본놈들은 타살이라고 하지 않는다. 모두가 병사로 간주한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일본놈들이 우리 조선사람들을 얼마나 무시했나 하는 것을 가히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아라이가 엄연히 맞아서 죽었는데도 그들의 장부에는 병자로 죽은 것으로 간주했다. 만일 누가 그 사실을 안다고 나섰다가는 그는 귀신도 모르게 죽는다. 그러므로 알고서도 그 사실을 말하지를 못했다.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라 잃은 설움을 어찌 말로써 다 표현하랴.
아라이가 죽은 그다음 날은 아침부터 이슬비가 내렸다. 그날도 우리들은 훈련을 계속했다. 오후 첫 훈련에 들어가자 나는 온몸이 벌벌 떨리며 팔과 다리가 뜯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눈앞이 아물아물하여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야외 구보를 할 때에 아라이 군과 같이 그렇게 되었던 모양이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와 같은 일은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더니 내가 석 달이 다 되어갈 무렵에서야 그와 같은 일이 생길 줄이야. 더군다나 그날에는 그다지 덥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다음부터는 세상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칠 팔 시간 뒤 나는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눈을 떠서 보니 연병장이 아닌 학교 교실 안에 누워있었다. 아물 아물 하는 호야 불빛이 보이는 것을 보니 밤인 모양이다. 그리고 내 주위에는 많은 동료들이 나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나로서는 그 영문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눈을 뜨고 그들을 바라다보았다. 그러자 동료들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야, 미스하라. 이제 정신이 좀 드나? 우리는 자네가 죽는 줄만 알았지.” 하고 말을 한다. “와? 내가 어찌 되었기에 그라노?” 하고 처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덕실이가 말한다. “야, 니 오늘 죽지 않은 것이 천행이다. 우리는 네가 아라이 꼴이 될까 봐서 얼마나 놀랐는지. 니시하라 그 자식이 아니었어도 니가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지.” 하였다. 그러자 하야시라는 친구는 덕실군을 꾸짖으며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그러한 말을..."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들의 말을 듣고 난 나는 오늘도 니시하라가 나를 때렸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날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야외 구보를 할 때 내가 그자를 때렸다는 그 앙심으로 나에게 복수를 한 것이 틀림이 없다. 나는 또 한 번 두 주먹이 불끈거렸다. 치가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왈칵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내 몸은 천근이나 되는 것처럼 무거워서 등이 마룻바닥에 딱 붙어 굴신을 할 수가 없었다. 정신 차린 다음부터는 온몸에 통증이 시작된다. 팔, 다리, 허리 어디 할 것 없이 안 아픈 곳이 없다.
니시하라에게 복수를 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자에게 얼마나 맞았는지 요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다 나라 잃은 아픔이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일본놈도 인간이고 보면 그럴 수는 없다. 니시하라 이자만은 인간 이하의 살인마이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은 더욱 심해 온다. 아픔을 참고 견디려 해도 내 입에서는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온다. 누구보다 튼튼한 내가 그렇게 아플 때에는 그저 몇 차례 매를 맞은 것이 아니다. “야, 덕실아. 어찌 되었기에 내가 이렇게 아프노? 본 대로 얘기 좀 해봐라.” 하고 덕실에게 물었다. 내 성질을 알고 있는 덕실은 입속말로 머뭇머뭇하였다. 그것은 내가 니시하라에게 많이 맞았다는 말 보다 더 명확한 표현으로도 볼 수가 있다.
하루 밤이 지나갔다. 연병장에는 오늘도 변함없이 “이찌 니, 이찌 니.” 하는 소리가 메아리 져 흐른다. 그러나 나는 꼼짝 달싹도 할 수가 없다. 대소변까지도 누운 체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므로 덕실이가 항상 내 곁에 있어야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