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의 시기까지 13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3


만에 하나 그자가 죽었다고 한다면 온 조선이 떠들썩할 것은 물론 훈련소 안이 발칵 뒤집어져서 휴가고 뭐고 있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조선사람이 일본놈을 죽였다고 한다면 그 당사자는 물론 훈련생 전원에게까지 어떠한 엄벌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노라니 그날 밤에는 한 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넘겼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이날 아침에도 전일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기상나팔 소리가 산곡에 메아리쳤다. 나는 가만히 일어나서 창문 틈으로 연병장을 바라다보았다. 니시하라가 어떻게 되었나 하는 것을 알고파서이다. 그런데 훈련은 시작되었는데도 니시하라는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워서 분해서 복수를 하기는 했으나 그가 보이지 않자 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죽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훈련생들은 선선한 새벽아침인데도 땀을 흘리며 훈련을 받고 있다. 모든 친우들의 몰골은 사람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대개의 훈련생들은 양복이 아닌 한복을 입고 훈련을 받는다. 제대로 군복을 입고 훈련을 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가 않았다. 그 군복이래야 무명베에 국방색 물감을 들여 각자가 집에서 입고 온 것이다. 그 하나만 보더라도 그 당시에 일본놈들의 악랄한 행위가 어떻다 하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뿐이랴. 혹자들은 옆구리에 담배 주머니를 길게 늘어트리고 훈련을 받는 그 몰골, 걸음을 걸을 적마다 담배주머니가 덜렁거려 이 쪽 옆구리에 툭, 저 쪽 옆구리에 툭, 꼭 오뉴월 소불알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을 바라다볼 때 아무리 배가 고프고 몸이 아파도 웃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놈들이 그만한 뒷받침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복이나 담배나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들 그렇다.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지만 일본놈들은 우리들 훈련생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질 않았다.


그날의 하루해도 흘러갔다. 저녁밥을 먹은 뒤 나는 아홉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덕실이는 내 두 손을 꼭 거머쥐고 이번에 나가거든 다시 이 훈련소에 되돌아 올 생각은 하지 마라고 했다. 그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덕실이뿐만 아니다. 다들 하나같이 그렇게 말을 했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말들이다. 나도 그러한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저녁 아홉 시가 되었다. 나는 동유들에게 작별을 하고 교문을 나섰다. 덕실이가 정문까지 따라 나와 귓속말로 말했다. “야, 내 말을 명심해라. 니시하라가 말은 하지 않아도 네가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그러니, 이번에 나가거든 귀대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아야 해.” 하였다. 내가 다시 귀대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하는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덕실과 헤어졌다.


그러나 나는 허둥허둥한 몸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 끝에 거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친척들 집을 찾아갔다. 무엇이라도 한 술 얻어먹지 않고서는 집까지 걸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컴컴한 밤길에 찾아가서 대문 앞에서 내동 아줌마를 불렀다.


내동 아줌마라고 하는 분은 우리와 가까운 집안의 딸이다. 그런데 그분은 청춘에 홀로 되어 자식하나 보지 못하고 한 많은 세상을 보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시부모 공양을 남달리 극진히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효부열녀라고들 했다.


얼마 후 대문이 열렸다. 나는 그 댁 마당으로 들어섰다. 내가 들어가자 내동 아줌마는 깜짝 놀라는 기색을 띄우시면서 “아이고 이것이 누구고? 아니 네가 이 밤 중에 어인일이고?” 하셨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내동 아줌마에게 사실을 다 말씀드렸다. 그러자 내동 아줌마는 다시 한번 놀란 기색을 띄우시면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그렇다면 우리 방우도 잘 알겠구먼.” 하고 묻는다.


방우라는 사람은 내동 아줌마의 양자 아들인 모양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방우라는 사람을 그저 같은 동유로만 여겨왔다. 그가 그 댁 아들인 줄을 알았더라면 서로 간에 알고 지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는 전연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아주머니, 방우라고요? 잘 알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간에 그러한 사실은 몰랐습니다. 그분이 아주머님의 아들인 줄 알았더라면 이때까지 인사도 없이 있었겠습니까? 나는 전연 몰랐습니다.”


“그래,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았으니 너희들은 알 턱이 없지.” 하고 아들 방우의 걱정을 하였다. 나는 우선 바쁜 것이 밥이다. 그래서 나는 아줌마에게 밥을 좀 달라고 했다. 그러자 내동 아줌마는 밥은 없고 먹다가 남은 죽이 있다고 했다. 그때 시절에는 죽 이상 더 바라지를 않았다. “예, 그거라도 있으면 좀 주십시오.” 내동 아줌마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만 죽 반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인정이 많은 그 아줌마가 생전 처음 찾아가 나에게 반 그릇 죽을 줄 때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댁 형편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나는 반 그릇 죽이나마 얼른 먹어치웠다. 그런 뒤 나는 곧바로 그 댁을 떠났다.


하늘에는 구름이 꽉 덮여 있었고 간혹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늙은 사람 모양 지팡이를 집고 가만가만 걸었다. 우수리 달밤인지라 질게넘의 고게 마루턱에 이를 때는 약간 무서운 기도 들었다. 하나 귀향의 길이다 보니 마음만은 느긋했다.


둥댕이 마을 앞에 이를 때는 이미 자정이 가까운 듯 마을 어느 곳에도 불빛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다. 이제 앞으로 남은 길은 거의가 평지요 산마루턱을 넘어야 하는 길은 없었다. 기진맥진한 몸으로서도 능히 걸어갈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무인지경인 각사절 앞에 이를 무렵에는 발길이 잘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굶은 데다가 무서운 기까지 겹쳐서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걸었다. 젊은 시절인지라 산짐승 따위는 언제든지 나오면 대항하겠다는 용기만은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다지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집에 이를 때까지 견디기만 하면 된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추근 추근 걸었다.


이제는 비도 오지 않는다. 하늘에는 간혹 달빛이 보이기도 한다. 이윽고 고향 마을에 이르렀다. 긴 한숨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때는 자정이 훨씬 넘어 셀 날이 가까워 오고 있는 듯싶었다. 마을 부근에 이르러서도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다. 개 짖는 소리마저도 없다. 다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소쩍새 우는 소리뿐이다.


나는 우리 사립문전에 이르게 되었다. 그제야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큰기침을 두어 번 한 뒤 나는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그러자 사랑방에서 할아버님이 누구야 하고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