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0
같은 일본놈인데도 이노우에라고 하는 훈교자는 그래도 작은 양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종종 우리들에게 배가 많이 고프지 하고 조금이나마 염려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러나 나이가 많고 돼지처럼 살이 찐 니시하라라는 작자는 아주 그와는 반대였다. 그자는 훈련 도중에 사람이 쓰러지면 허기에 지쳐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은 전연하지 않고 꾀병을 한다고 하여 무조건 두드려 팬다.
우리들이 먹을 쌀을 착복한 자도 바로 그자였고 훈련생들을 못살게 하는 자도 그자였다. 얼마나 못살게 하였으면 그자의 별명을 인간백정이라고까지 하였을까.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니시하라 그자가 비위에 거슬려 그곳에서 훈련을 끝을 낼 것 같지가 않았다. 죄 없는 우리들에게 모진 매질을 하는 것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이가 갈릴 때가 허다하다. 이자는 우리들을 개나 돼지처럼 취급했다.
칠월 어느 날 오후였다. 우리 훈련생들은 야외 구보에 들어갔다. 그날따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거기다가 바람마저도 없었다. 자갈이 꽉 깔려있는 강변도로 따가운 불볕이 내려 쪼여 자갈무덤이 불덩이 같이 달아 있었다. 그래서 구보를 시작한 지 단 오분도 채 못되어 훈련생들의 온몸에는 물에라도 빠진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바로 내 앞에서 달리던 아라이라고 하는 친구가 도중에 쓰러져 버렸다. 허기에 지치고 더위에 시달리어 쓰러진 모양이다. 해서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사람이 죽었소.” 하고 고함을 친 것이다. 그러자 앞에서 가든 니시하라 훈교자가 가던 길을 멈추고 달려왔다. 넘어진 아라이는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다. 그러나 그의 팔목에는 가는 맥박이 뛰고 있었다. 비단 아라이뿐만 아닐 것이다. 숨통이 콱콱 막히는 그 더운 날씨에 계속 뛰어간다면 누구나 다 그와 같이 쓰러지지 않고는 배겨 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니시하라 훈교자는 아라이가 꾀병을 하고 있다면서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 쇠가 박힌 구둣발로 사정없이 후려 찬다. 한 번씩 찰 때마다 퍽 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라이는 아프다는 신음소리도 없이 두 눈을 꼭 감은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보다 못하여 니시하라에게 말을 했다. 꾀병을 앓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니시하라는 다짜고짜 없이 돌아서서 내 뺨을 후려갈긴다. 눈에 불이 번쩍했다. 억울하게 맞는 뺨이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해서 나는 니시하라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자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각오에서 발작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그자를 때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저 놈 죽여라 하고 일제히 니시하라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니시하라와 이노우에는 죽을까 봐서 도망을 쳐버렸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구보는 끝이 났다.
우리들은 쓰러져 있는 아라이를 등에 업고 훈련소로 돌아올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라이는 훈련소까지 오기도 전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이십 청춘에 병이 들어 죽는데도 그 한이 여산커늘 하물며 왜놈들에게 맞아서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커다란 비극이다. 그런데도 일본놈 니시하라는 제 잘못을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일본놈 순사 한 놈을 데리고 왔다.
그러자 그자들은 아라이 군이 죽었다는 것은 전연 모른다. 그저 우리 훈련생들에게 보복을 하러 온 모양이다. 허나 다 와서 보니 사람이 죽어 있음을 알았다. 아무리 악독한 왜놈들일지언정 사람이 저로 인해 죽었다는 것을 알 때에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다.
그를 따라온 순사도 처음에 올 때와는 달리 사람이 죽어있음을 알게 되자 니시하라를 보고 꾸짖었다. 사람을 죽여놓고 무엇을 잘했다고 나를 데리고 온 거야 하면서 도리어 니시하라의 뺨을 후려친다.
그러나 그것은 그자들의 임시 연극이다. 다만 우리의 눈을 위하여 후일을 염려해서 그저 해보는 소리다. 우리 조선사람이 그 니시하라에게 백 명 맞아 죽었다고 해도 그 니시하라는 작은 벌도 받지 않는다. 그 죄 모두는 우리 조선사람이 뒤집어써야 한다. 그러므로 순사가 니시하라를 아무리 나무란다 해도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일본놈 순사가 니시하라를 나무라는 그 이유는 만에 하나라도 아라이 군이 훈교자 왜놈에게 맞아서 죽었다는 소문이 상부에까지 알게 될까 봐서 저 자신을 위하여 해보는 헛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