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의 시기까지 12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2


그저 아픈 것 같으면 덕실군을 내 곁에 둘 리가 만무하다. 혹시 아라이처럼 될까 봐서 왜놈들이 선심을 쓰는 척할 뿐이다. 그래서 덕실과 나는 훈련을 받지 않고 교실 안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일본놈들은 나를 환자랍시고 때마다 죽을 한 술 씩 주고 만다. 밥을 먹어도 죽을 지경인데 죽으로 연명을 하라고 하니 그것이 생사람 잡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도 사실 환자라면 또 모른다. 저놈들에게 맞아서 아픈 것을 고의적으로 죽이려고 하니 하는 말이다. 사, 오일 동안 계속해서 죽을 먹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이제는 기운이 없어 일어날 수가 없었다. 병이 낫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자꾸만 쇠진해져 갔다.


그래서 니시하라는 내가 거기서 죽을까 봐 겁을 내어 저들 마음대로 병명을 고쳐 임시 휴가증을 끊어 주었다. 그들은 내 병을 전염병이라고 거짓 문서를 꾸민 뒤 휴가를 시켜주는 것이다. 어쨌건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귀향할 시간은 내일 저녁 아홉 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귀대할 날짜는 없다. 내 몸이 완쾌되면 언제나 귀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무한 휴가증인 것이다.


훈련을 끝마치고 교실로 들어온 친우들은 “야, 미스하라. 너 참 잘되었다. 그것을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줄 알았더라면 나도 아프다고나 할 것을...” 하며 아파서 귀가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훈련생들의 고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그날 밤이 되었다. 친우들은 고된 훈련에 지칠 대로 지쳐 눕기가 바쁘게 금방 여지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한 가닥 희망 때문에 기쁜 나머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밤 열 시가 될까 말까 할 그럴 무렵에 나는 짝지(지팡이)를 집고 화장실로 나갔다.


바깥은 바람소리만 들려올 뿐 고요하다. 그날은 달이 훤히 밝아 있을 때이건만 어쩐 일인지 하늘에 검은 구름이 꽉 덮여 간간이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믐밤처럼 깜깜하다. 한 걸음 앞의 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짝지를 더듬더듬하면서 장님처럼 걸었다. 학교 뒤에 있는 화장실 문 앞에 들어섰다.


바로 그때였다. 화장실 안에서 쿨럭쿨럭 하는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기침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또 한 번 쿨럭한다. 그 기침소리는 틀림없이 니시하라의 기침 소리다. 내 뇌리에는 이것이 기회로구나 하는 생각이 홀연히 떠오른다. 언젠가는 원수를 갚으리라고 이를 갈던 나이다. 화장실 문 옆에 가서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내가 집고 간 지팡이는 단단한 참나무 막대기다. 그 짝지로 니시하라의 골통을 한 번 내려치면 저놈이 항우장사라고 해도 죽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그자는 기침 소리만 요란하게 낼뿐 얼른 나오지를 않는다. 그자는 그때 나이가 사십이 조금 넘었다. 이마가 훌떡 까졌고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자는 그때 벌써 폐병 2기 환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자는 항상 막살이 인생처럼 되는대로 저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중일전투에 나가서 싸운 경험이 많은 자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여간 포악하지가 않았다.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 자이다. 아라이가 죽은 것도 내가 맞은 것도 다 그러한 까닭에 빚어진 일이라고 볼 수가 있다.


얼마 후 화장실 문이 슬며시 열린다. 그리고 사람의 형체가 어슴프레 보인다. 그는 바로 니시하라였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집고 있던 막대기로 그 자의 목을 후려쳤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아야 소리 하나 없이 툭 쓰러진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자의 허리와 볼기짝을 내려쳤다. 수도 없이 죽지 않을 만큼 때렸다. 내가 맞아서 고생한 일을 생각하면 당장에 죽여도 한이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죽이고 싶었지만 인간의 도리를 생각하여 사정을 두고 때린 것이다.


그런 뒤 나는 조심스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도 내 자리에 가서 살며시 누웠다. 내가 니시하라를 때렸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잠자리에 누웠다. 통잠이 오지를 않는다 때려놓고 생각을 해보니 혹시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