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의 시기까지 14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4


할아버님은 이미 새벽잠을 깬 모양이다. "예 저예요"하고 나는 할아버님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우리 온 가족들이 다들 잠에서 깨어 뛰어나왔다. 내가 들어가자 우리 온 가족들은 훈련소에서 내가 무슨 큰 죄라도 짓고 도망을 쳐 나왔는 줄만 알고 의아히 여긴다. 그중에서도 어머님께서는 "예야, 이 밤중에 어인일이고. 훈련소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하셨다 그것은 낮에 오지 않고 밤에 왔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나는 몸이 아프다는 이야기와 휴가증을 내어 보냈다. 그러자 가족들은 그놈에 자식들은 무슨 휴가를 밤에 주는 거야 하며 다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갔다. 마누라도 뒤를 따라 들어왔다. 나는 마누라에게 배가 고프다고 말을 했다. 내 말을 들은 마누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부엌으로 나가 먹다가 남은 죽을 가지고 왔다.


죽을 맛있게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옆에 누운 마누라는 내가 밤에 귀가한 것을 아직도 의심을 하여 참으로 휴가를 받았느냐고 되묻는다. 나는 대답대신 손을 꾹 거머쥐었다.


그날 하루 밤도 지나갔다. 두 시간도 채 못 가서 날이 밝아 온 것이다.


"예야, 아침 먹으러 오너라." 할머님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곧장 대답을 하고 큰 방으로 건너갔다. 몸이 노곤하여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할머님이 부르시는데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다. 큰 방에 들어가니 벌써 아침 상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온 가족들이 다들 한 방에 앉아 아침밥을 먹게 되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밥을 퍼올렸다. 밥에 환장을 한 나이다. 가까운 석 달 동안에 얼마나 많은 배를 곯았던가. 죽어도 밥 한 번 실컷 먹어보았으면 하든 그 밥이다. 나는 눈 깜박할 사이에 한 그릇 밥을 다 해치웠다.


그러자 할머님은 "예야, 천천히 먹어라. 골든 창자에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해롭단다." 하시었다. 그러나 내 귀에는 할머님의 말씀이 들어오지를 않았다. 산봉우리처럼 소북이 담은 밥을 한 그릇 다 먹어도 먹은 둥 마는 둥 하였다.


그래서 할아버님이 남기신 밥을 더 먹었다. 그래도 밥이 먹고파서 침이 꿀꺽꿀꺽 넘어갔다. 밥에 미친 사람 모양 나는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누구도 내 마음을 알 턱이 없다. 그렇게 배가 고파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먹고도 밥을 더 달라고 부탁을 했다. "조금 더 있다가 먹어라." 어머님이 말했다. 처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밥에 미친 사람 모양 행동을 하니까 이상한 모양이다. 놓기 싫은 술을 억지로 놓고 밖으로 나갔다.


대청마루 끝에 걸터앉아 우연하게 내 눈에는 대추나무가 띄었다. 사립문 바로 옆에 서 있는 그 대추나무는 수십 년을 큰 늙은 대추나무다. 그 굵기가 두 아름이나 되었다. 그런 대추나무에 대추알이 온통 꽃송이처럼 빨갛게 매달려 있다. 내일모레가 추석이니까 익을 때가 되었다. 그를 발견한 나는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긴 장대를 들고 가서 그 가지를 두드렸다. 빨간 대추알이 주르륵주르륵 쏟아진다.


더러 알 들은 쇠똥 위에도 떨어져 있고, 혹은 마당 위에 떨어져서 먹지 못할 것도 아니다. 나는 누가 볼까 봐서 얼른 바가지에 주어 담아 대청마루로 갔다. 부엌문 앞에서 마누라가 그것을 구경한 모양이다. 나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전에는 그렇지 않던 사람이 왜 저럴까 한 생각이 든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누구의 눈 때문에 체면 같은 것을 차릴 겨를이 없다. 빨간 대추알을 한 입씩 입에 털어 넣었다. 거의 한 되나 되는 것을 잠시 동안에 다 해치웠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먹어야 한다. 주린 창자를 채우자면 그렇게 할 수밖에는 없다. 특별히 사람이 달라서가 아니다. 내가 아닌 그 어느 누구일지라도 내 처지에 이르게 되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완전 해갈은 되지 않았다. 약간 눈을 뜰만한 그러한 정도이다.


그렇게 한 뒤 나는 이웃을 나갔다. 먼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노는 갑산댁으로 찾아가 보았다. 그날도 이 댁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모두들 이것 박서방 아니가 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경달은 우르르 달려와서 내 허리를 껴안기도 했다.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들어가니까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그 댁 마당에는 모두가 이웃 사람뿐이요 정작 있어야 할 주인은 보이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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