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2
하지만 나는 태방우에게 한 말이 그저 웃을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부탁을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태방우 형제를 바라다보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듣도록 얘기를 했다.
내 말을 들은 그 댁 식구들은 별안간 화색이 감돌며 "이 사람아, 그것이 참말이가? 그렇게 된다면야 서로 간에 얼마나 좋을까" 하였다. 나는 그 즉시로 태방우에게 나온 모집장을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댁 둘째 며느리가 얼른 일어서서 장롱 위에 얹힌 모집장을 내려 나를 준다. 그 모집장에는 "가네모토 아끼나리"라고 태방우의 일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추석명절을 지나고 그다음 날 떠나면 된다.
훈련소에서도 그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 말이 누설이 된다면 태방우도 그렇지만 나는 즉각 총살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떠날 때까지는 절대로 누설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럼, 그래야 하지." 그 집 식구들도 입을 모아 그렇게 말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로서는 그 이상 더 기쁠 수가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걱정을 하고 앉아 있던 그 댁 식구들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는 태방우 처를 바라다보며 "처남댁, 오늘 한 턱 내야 해요.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과부가 되었을 텐데..."하고 희담을 걸었다. 그러자 태방우의 처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그래, 박서방 때문에 과부신세를 면했으니, 내 오늘 한턱 내지"하고 깔깔 웃는다. 나는 그 즉시로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이 추석이니까 하룻밤만 더 자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는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향리를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솟구쳐 오른다. 울적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인생무상을 그때서야 처음 깨달았다. 방안에 들어가서 누워도 편하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나 후원으로 돌아가 보았다. 그 후원에는 우리 끝에(막내) 삼촌 점돌 아저씨가 심어놓은 커다란 꾀양(개암)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그 꾀양나무에는 많은 꾀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것이 점돌 아저씨의 모습인 양 내 눈에 선히 떠 오른다.
우리들을 그렇게 사랑하던 아저씨, 온 가족들을 위하여 희생을 한 점돌 아저씨, 이제는 그 아저씨와 나는 영원히 만날 수가 없다. 설령 아저씨가 병(옴)이 완쾌되어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여도 이제 나와는 또다시 만날 길이 없다. 일본놈들이 망하지 않는다면 나란 인간은 이 세상에 살아있어도 귀향할 수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나는 꾀양나무를 바라다보며 자탄의 한숨만 내쉬었다.
저녁밥을 먹은 다음 내 방으로 들어갔다. 부엌 설거지를 끝마친 처도 방으로 들어왔다. 처에게 까지 나의 비밀을 숨길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아니 참아야 한다. 만에 하나 내가 떠나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그 말을 어른들에게 전하게 된다면 어른들이 그냥 보고 있을 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군대에 나간다면 돌아올 여망이라도 있겠지만 그렇게 떠나게 되면 일본놈들이 승전을 하고 있는 그 판국에 돌아올 기약이 없는 것은 너무나도 뻔하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대번에 거절을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간다 못 간다 하고 옥신각신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그러므로 나중에 원망을 듣더라도 처에게까지 비밀을 지키자 이렇게 생각하고 그날 밤 나는 마누라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