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4
바로 그때였다. 우리나라 교포들이 우리가 간다고 마중을 나왔다. 거기에는 중년 부인네들도 있었고, 늙은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모두가 파리한 얼굴에 초췌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언제 일본땅 건너왔는지는 몰라도 그 행색을 보아서는 몹시 가난해 보였다.
우리 일행은 노상에서 그분들을 만나서 서로 간에 안부를 물었다. 반가운 마음은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도 일본놈의 노예가 되어 그곳까지 끌려와서 살아간다고 생각할 때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땅을 치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면 일본 땅까지 건너가서 그 모양 그 꼴로 사는가 하는 것이다.
젊은 부인네들도 몇 분 있었지만 그들 역시도 고생을 한 표시가 얼굴 속에 역력히 드러났다.
잠시 후 우리 일행은 기다가다 탄광 본 건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기숙사 건물이 수십 채요 식당, 강당 등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것을 우리는 들어가자 말자 구경을 했다.
그런 뒤 우리 일행은 강당에 다들 모였다. 거기에는 조선인 통역자가 하나 있었다. 그 자 역시도 탄광에서 부지런하게 일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을 했다. 하루 노동을 한 품삮은 일원 오십 전인데, 밥값, 옷값을 제하고 나면 한 달에 삼십 원이라는 거액을 벌 수가 있다는 그 말이다. 땅 속 수천 길을 들어가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인데 한 달에 삼십 원을 준다고 하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우리 조선 땅에서 김을 매 줘도 일원 오십 전은 받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자들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을 그 밖에 주지 않는다고 하니, 이 어찌 기탄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왜놈들의 연설을 들은 우리들은 다들 하나같이 한숨을 지었다. 그것도 하루 열두 시간을 일을 해야만 그렇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노임이 없는 것만도 못하다. 그렇게 하면 조금의 자유라도 있을 것이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루 열두 시간을 일을 하고 일원 정도의 수익이 있다는 그것은 그 장시간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안 된다는 그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보는 견지에서 그렇다 하는 이야기지 목이 매여 끌려간 우리들로서는 그들이 공짜일을 시킨데도 어쩔 도리가 없다. 연설을 들은 뒤 우리는 각자가 거할 처소를 정하게 되었다.
나는 문간에서 두 번째 방을 정했다. 한 방에 배당된 사람은 네 사람씩이었다. 방이 적어서 네 사람이 자게 되면 한 방 꽉 찬다. 침실마저 넉넉하지가 않았다. 우리 방에 네 사람은 모두가 똑같은 또래 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방은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이었다. 마루 위에 다다미를 깐 그러한 방이다.
이십일 년간을 살아도 냉방에서 자보기는 처음이다. 거기다가 이부자리도 아주 얇은 모포때기이다. 그러나 아직은 추운 겨울이 아니니까 우선을 견딜 수가 있다. 하지만 동절에 가서도 그 모양이라면 살 것 같지가 않다.
저녁때가 되었다. 조석 때가 되면 밥을 먹으라는 요롱소리가 딸랑딸랑 소리를 낸다. 그것도 연설을 할 때 말을 해 주었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저녁밥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모두들 갔다.
식당은 한 없이 넓다. 오륙백 명쯤은 한꺼번에 앉아서 식사를 할 수가 있을 정도로 광활하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서 앉으니까 밥그릇과 국그릇이 저절로 사람들 앞에까지 들어온다. 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되게끔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사람들도 식사를 하는데 그다지 분주하지가 않았다.
기계적으로 들어오는 밥그릇. 그 탄광의 자랑거리라면 그것을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밥의 양이 너무 적다. 훈련소에서 먹던 밥보다가 조금 많을 정도이다. 노동일을 하는 젊은 사람이 먹고 살기에는 너무나도 적은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는 돈만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군 음식거리가 얼마든지 있었다. 노임이 적어서 그렇지 배고픈 것은 걱정을 안 해도 되게끔 되어 있었다.
다만 자유로이 먹을 수 없는 것은 술이라고 했다. 술만은 제한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까짓 술 따위는 적고 많고 간에 나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술도 잘 마시지 못하고, 무엇이든 간에 배불리 먹을 것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다.
아직도 군사 훈련을 할 때에 주린 창자가 덜 채워진 모양이다. 먹는 것만 위주로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