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0
나와 미모도씨는 그곳을 유유히 떠났다. 그러나 밤길인지라 가다가 보면 길이 막히고 어떻게 가면 늪이 앞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거기다가 탄광에서 정남으로 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남쪽에는 나가사키깽이 있다. 나가사키깽에는 노동일 할 것이 많이 있고, 우리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것은 탄광에 있을 때 여러 번 들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빨리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길이 없더라도 남쪽으로 향해 가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이 있는 논들이나 가시넝쿨이 있는 산길이나 가리지 않고 남으로만 향해 걸었다.
늦가을 바람에 수숫잎 소리가 버석버석하고 소리를 낸다. 탄광 사택을 떠난 지 한 시간쯤 되었다. 이제는 비도 그치고 하늘에 구름이 얼멍덜멍하여 간혹 북두칠성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북두칠성을 등지고 남으로 남으로 남으로 달려갔다.
얼마쯤 가다가 보니 우리 앞에는 큰 길이 하나 나타났다. 그 길은 남북으로 뻗어져 있었다. 나는 다행스럽게 생각을 하고 그 행길에 올라섰다.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대로 위에는 길옆에 서있던 대나무가 쓰러져서 길을 꽉꽉 막고 있었다.
높은 산이라서 그런지 그곳에는 비바람이 많이 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데는 그다지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날이 새기 전에 멀리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마구 뛰다시피 달렸다. 그러나 이슬에 젖을 대로 젖은 바짓가랑이는 걸음을 걸을 적마다 와삭와삭하고 소리를 낸다. 우리는 그 길을 그치지 않고 곧장 걸었다.
생각에 오십 리는 간 것 같다. 작은 령을 하나 넘었다. 아주 무인지경이다. 스기나무(일본 삼나무)가 한없이 울창하여 조각달이 있는데도 길바닥이 엄펑덤펑하여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일본놈들은 그때부터도 삼림에 힘을 쓴 모양이다.
그런데, 그 깊은 산골짝에 작은 초가집이 하나 있다. 우리는 그것이 도리시마가 살고 있는 집인 줄 알고 그 부근을 지날 때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가만 걸었다.
새벽 두 시쯤 되었는 데도 그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집을 지나고 나니 어디에선가 개소리가 들려온다.
멀지 않게 인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 밖에는 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그 길을 따라 곧장 갔다. 얼마가지 않아 길 양옆에 초가집들이 드문 드문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밤이다. 촌 동리를 지나간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을라고 하는 생각에서 마을 본판으로 곧바로 갔다.
그런데 동리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집들이 점점 많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것이 웬일인가? 우리 바로 앞에는 큰 건물들이 즐비하게 있고 도로도 모두가 아스팔트로 되어 있었다. 큰 도회지인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옆길로 빠져나갔다. 그 길로 조금 들어가니 낮은 야산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산으로 올라갔다. 그 산은 전체가 가시넝쿨로 엉켜져 있다. 뚫고 나갈 수가 없다. 그렇지만 되돌아 설 수는 없다. 죽을힘을 다하여 마루턱에 올라서게 되었다. 얼굴과 팔이 가시넝쿨에 긁혀 피가 줄줄 흐른다. 그리고 마루턱에는 왜놈들의 공동묘지이다.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하여 탑 속으로 들어갔다. 그 탑이란 것도 절에 탑과는 달리 사람이 들어가서 앉아 놀 수가 있을 정도이다. 부잣집인 모양이다. 생긴 모양은 경주 다보탑같이 생겼는데, 그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다. 미모도씨와 나는 그 탑 안에서 담배를 한 대씩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