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1
그런 후 우리는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 금방 날이 밝을 것만 같았다. 날이 밝기 전에 우리는 깊은 산골로 들어가야만 한다. 낮에는 걸어 다닐 수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산이 보이지 않았다. 산을 찾아가자면 큰 도로를 하나 건너야 한다. 그 도로가에는 기차역도 하나 보인다. 그러므로 그 길을 건너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넓은 들판에 그냥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해서 우리는 이판사판이라 생각하고 그 행길을 건너기로 하였다. 날이 훤히 밝아 오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우리는 그 행길을 건넜다. 다행하게도 무사히 건너갔다. 혹 농민들이 우리를 본다고 하여도 기다가다 탄광과 거리가 멀다가 보니 그다지 의심하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도로를 건너 곧바로 산으로 올라갔다. 일본산은 가는 곳마다 수목이 울창하다. 그리고, 일본산에는 왠 놈의 고사리가 그리 많은지 고사리밥나무 때문에 산길 걷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작은 산등성을 하나 넘는데도 몇 시간씩 걸려야만 했다.
약 3시간쯤 걸어 산을 하나 넘었다. 동쪽에는 아침해가 떠오른다. 이제는 안심이다. 적어도 백리는 더 온 듯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날이 밝았으니 더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라도 머물 곳을 구해야만 하였다.
사방을 돌아다보았다. 저 쪽 산골짝에 볏짚가리가 하나 눈에 띌 뿐 비바람을 피할 곳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미모도씨와 나는 볏짚가리를 찾아갔다. 그 볏짚 가리는 금방 탈곡한 것같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짚동이 십여 개 서 있다.
우리는 그 짚동을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그런 뒤 그 속에 들어가서 누웠다. 배는 고프지만 졸음이 와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길을 걸어서 피곤함도 있겠지만 그 보다가 정신적 고통이 더욱 피로를 느끼게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눕기가 바쁘게 잠이 들었다.
늦가을 산골인 데다가 추수까지 다해갔으니 이제 그곳에는 사람이 올리도 만무하다. 해서 우리는 안심하고 누웠던 것이다. 짚가리일 망정 우리들에게는 고대광실 좋은 집 보다가 더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우리는 잠을 깼다. 피곤함도 많이 가셨다. 그러나 잠을 깨고 나니 배가 고프다. 해가 벌써 하늘 가운데까지 솟아올라 있다. 그 주위가 어떻게 되어있나 하고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낮은 산등성이로 올라가 보았다. 저쪽 동편 쪽에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부근에는 인가가 전혀 없다. 들판만 보이고 인가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들판을 보니 논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밭이다.
나는 산등성에 올라앉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휘돌아 보았다. 그 평야에는 많은 길이 여기저기 뚫어져 있었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어느 길로 어떻게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낮은 목소리로 미모도씨를 불렀다. 그는 곧바로 산등성이로 올라왔다.
나는 미모도씨를 보고 나가사키깽으로 가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물어보았다. 나이가 많으니까 추측으로도 나보다가 잘 알 것인가 하고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미모도씨는 "내가 멀 아요, 나는 미스하라상이 하라는 데로 할 거요." 하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해서 나는 미모도씨에게 "좌우간 우리 저 들판에 내려가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였다. 그러자 내 말을 따르겠다는 미모도씨는 펄쩍 뛰며 "안 돼요, 안 돼. 이 대낮에 들판에 내려갔다가 누구를 만나기라도 하면 어쩔라고........" 하고 반대를 한다.
그렇다면 낮에는 사람이 겁이 나서 갈 수가 없고, 밤이 되면 어두워서 갈 수가 없으니 어쩌면 된다는 말인가? 복안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 무책임한 태도로 패 받는 그 언질, 나로서는 불쾌하기가 짝이 없다. 같은 젊은 사람 같았으면 뺨이라고 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 이제 여기까지 무사히 나왔으니까, 여기서 헤어집시다. 두 사람이 되면 남의 눈에 띄기도 쉬우니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피차간에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아는 사에에 의견이라도 충돌되면 차라리 안 온 것만 못하지 않겠소."
그러자 미모도씨는 얼마 동안을 생각을 하더니 내 의견에 따른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산기슭에 고구마 밭이 하나 있다. 투박한 땅에 고구마 넝쿨이 댕댕이칡처럼 아주 빳자랐다. 우리는 배가 고프던 차에 일단 꼬챙이를 하나씩 구하여 고구마를 캐 보았다. 고구마라고 하는 것이 아주 밤톨만큼씩 하다. 한입에 넣어도 안 찰 정도였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는 그것이라도 먹어야 한다. 배가 고프던 차에 그것이라도 먹으니까 조금은 낫다. 그러나 입속에서 흙이 버석버석한다. 그곳에서 들판을 내려다보니 그 들판 전체가 다 보인다. 그리고 바루 우리 밑에는 연기가 무럭무럭 나는 큰 굴뚝이 하나 보인다. 그것은 필연코 무슨 공장인 모양이다. 옳지 되었다 하고 미모도씨와 나는 서슴지 않고 그 공장을 찾아갔다. 그 공장이 무슨 공장인지는 몰라도 그 굴뚝을 보아서는 꽤나 큰 공장인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