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2
정문에 들어서니 몇 사람이 마당 한 복판에서 진흙을 이기고 있었다. 얼른 보아도 그 공장은 도자기 공장임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서투른 일본말로 주인에게 일거리가 있으면 일을 좀 시켜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주인은 "당신네들 조선에서 들어왔지요?"하고 조선 말로 되물었다.
우리는 너무나 반가웠다. 타국땅에서 그것도 도주를 하는 우리 입장에서 같은 동포를 만나게 되니 얼싸안고 춤이라고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일을 좀 시켜달라고 애원을 하듯 바싹 달라붙었다.
그러자 그는 우리의 행색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만 내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당신네들 탄광에서 나왔지요?" 하고 되묻는다. "그렇습니다." 하고 나는 같은 조선 사람이니까 조금도 거침없이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일은 있기는 하지만 품삮이 싸다고 말을 한다.
일이 있다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반가웠다. "그래요 품삮이야 남 열리데로 받지요. 하루 얼마씩인데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자의 대답은 품삮이 일원 오십 전이라고 하였다.
순전 도둑놈이다. 그 시절에 일원 오십 전이라는 품삮은 들어본 적도 없다. 하도 어이가 없어 그자와는 두 번 다시 말하기 싫다. "그래요? 그렇게까지 품삮이 쌉니까?"하고 우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곧장 그곳을 떠났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우리는 하루 동안 굶었는데도 며칠이나 굶은 사람처럼 기진맥진하다. 같은 동족을 만났는데도 공장주인 이 자는 밥 한 술 먹어보라는 말 한마디 없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괘씸하다. 우리 두 사람은 그 공장을 떠나 넓은 들판 위로 걸었다.
늦가을바람은 정처 없이 가고 있는 우리들의 발길을 재촉이라도 하듯 등을 떠밀며 귀뺨을 후려친다. 들판 위에는 곡식이라고는 전연 없다. 간혹 보이는 것은 모가지가 잘라진 수숫대 그것뿐이다. 높은 밭둑 아래길로 내려섰다. 그 밭둑 아래는 작은 초가집이 하나 있다. 나는 또 그 댁을 찾아갔다. 농갓집이 분명하니 주린 창자를 채워볼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사립 문전에 가서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칠십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한 분 나온다. 나는 그 할머니에게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할머님은 밥은 없고 먹다가 남은 고구마가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것이라도 좀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할머님은 우리들에게 방으로 따라 들어오라고 하면서 앞을 선다.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곧바로 삶은 고구마를 한 바가지 내어 놓았다. 참으로 고마우신 할머님이다. 나는 고구마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산도설고 물도설고 다낯서른 이국땅에
뜻밖에도 동포만나 기뻐함도 했건만은
우리들은 쫓겨나서 이곳까지 온것일세
네가내가 되었으면 그마음이 어떻겠노
할머님은 뉘시건데 죽어가는 우리에게
자기자식 생각하듯 애처롭게 여기시고
주린창자 채우라고 후이후이 대접할까
동포에겐 창피받고 왜인에겐 삶받았다
도공과 할머님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았다. 할머님의 덕택으로 우리는 주렸던 창자를 양껏 채웠다. 그런 뒤 우리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그 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