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일본 적응기 1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1


해는 아주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님의 말에 의하면 나가사키깽이 멀지 않다고 하였으니 그다지 당황할 필요는 없다. 가다가 날이 저물면 산기슭 아무 데서나 자면 되겠지 이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우리 앞에는 커다란 냇물이 하나 앞을 가로막는다. 이제는 길도 없다. 그 냇물을 건너야만 그쪽 건너편에 행길이 있다. 그러나 그 냇물은 매우 깊다. 새파란 물이 보기에 한길이나 되어 보였다. 그래서 그 서늘한 늦가을에 우리는 바지를 홀랑 벗고 물을 건넜다.


그런데 그 물은 보기와는 달리 그다지 깊지가 않다.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건넜어도 충분한 물이다. 그 근방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다행이지 구경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웃음거리가 될 뻔했지 머야.


그 냇물을 건넌 다음 우리는 커다란 행길에 올라섰다. 그곳은 아주 음습한 산골짜기였다.


흡사 우리 고향에 있는 솔미기와 유사하다. 물을 건너 행길에 올라설 무렵에는 이미 석양이 재산하여 황혼이 찾아든다. 그러나 우리의 앞길은 정처가 없다. 그날 밤도 밤이 새도록 걸어야 할는지 어디 가서 잘 곳이 있을는지 막연히 가고 있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걸어갔다. 달이 떠오르기 전인지라 칠흑처럼 깜깜하다. 그런데 작은 고개를 넘어서니 우리가 가는 앞에는 큰 도회지가 앞을 가로막는다. 가로등불이 휘황찬란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갯마루턱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길옆에 있는 작은 바위돌 위에 올라앉았다.


바로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행길에 누군가가 한 사람 우리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자가 혹시나 탄광에서 나온 도리시마가 아닐까 하고 마음속으로 은근히 겁이 났다. 그러나 이제는 이발난충으로 그 자가 비록 도리시마라고 할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사불여의하면 우리는 그자를 때려눕히고 도망을 칠 수 밖에는 없다. 해서 나는 대담하게 그자가 우리 앞에까지 올라올 때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그자는 우리 앞에 바싹 다가왔다. 좋은 양복에 나까오리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서투른 일본말로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 조선말로 대답을 한다. "당신네들 조선 사람이지요? 나도 조선 사람입니다. 그래 무슨 일로 이 어두운 곳에 있습니까?" 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안 되는 일본말을 하였지 뭐요. 같은 동포라고 하니까 사실을 말하겠소. 우리 두 사람을 사실 사가깽 기다가다 탄광에서 도주를 하여 나온 사람입니다. 낯선 이국땅인 데다가 말까지 서투르니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선생님은 보아하니 일본땅 지리나 모든 면에서 능숙할 것 같으니 우리들을 좀 살려주십시오."하고 그자를 추겨 세워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사정은 딱합니다만, 나인들 무슨 힘이 있어야지요. 나도 일본에 건너와서 별로 할 일이 없어 지금 산중에 들어가서 산판을 하고 있습니다. 댁들이 산판 경험이 있으면 그런 곳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 피신을 하는 데는 더 좋은 곳은 없겠지요. 허나 우리 산판에서 일을 하게 되면 품삯이 적습니다."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우리 바로 옆에는 한 젊은 사람이 서서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


그는 작은 키에 약간 뚱뚱한 편이었으며, 머리에는 납작한 도리구찌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의복 차림세까지도 꼭 탄광 도리시마같이 생겨 있었다.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이자가 틀림없이 우리를 잡으로 온 모양이다. 말까지 엿듣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하던 이야기를 뚝 끊고 그자를 물끄럼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나도 조선사람이오. 이 부근에는 조선 사람들이 조금 드문 편인데, 같은 조선 사람을 만나니 참으로 기쁩니다." 하고 인사를 청하였다. 우리는 그제야 맘을 놓을 수가 있었다. "예, 저는 미스하라라고 합니다.", "저는 미모도요.", "나는 가네모도라고 합니다."


네 사람 모두가 창씨된 성을 말했다. 인사를 나눈 뒤 가네모도라는 사람이 말했다. "얘기를 들으니 이 두 분은 일자리를 구하는 모양인데 목상 어른께서는 이 두 분을 데리고 할 생각입니까?"하고 목상이라는 사람에게 묻는다. 그러자 목상 장수는 "글쎄요, 이분들의 사정을 봐서는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현재는 인부가 남아도는 편이랍니다."하고 말꼬리를 감추었다.


조금 전만 하여도 그는 우리에게 일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품삯도 하루에 삼원씩이라고 했다. 그러던 그가 가네모도씨를 보고부터는 일거리가 없는 것처럼 말꼬리를 딴 데로 돌린다. 그러자 가네모도는 우리들을 돌아다보며 "요 바로 옆에 일거리가 있기는 합니다. 하루 여덟 시간 일을 하면 일당 오원씩을 주지요. 그러니 선생들 생각대로 하십시오. 나도 같은 조선 사람이니까 하는 말입니다." 하였다.


조그 전에 하루 삼원씩 준다고 하는 목상의 말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있는 말이다. 가네모도의 말을 들은 목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러면, 그리고 가십시오. 그 참 잘 되었소." 하고 떠나버렸다.


우리는 가네모도씨의 말을 믿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소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가네모도는 "부탁을 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가면 내일부터 일을 할 수가 있으니까요. 노동일이야 어디 여기뿐입니까? 어디든지 가면 천지가 일인걸요." 하였다. 경상도 사투리다.


그는 일본 땅에 건너온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다. 자기도 처음에는 탄광 모집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그는 경산남도에 고향을 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네모도씨는 조금 전에 떠난 목상에게 "그놈의 자식 순 도둑놈이구만, 사기를 해쳐 먹어도 할 때 해야지. 이 일본천지에 하루 품삯 삼원을 주는 데가 어디 있노."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역시 그는 우리 편이요, 고향사람답게 말을 한다. 나와 미모도는 그날 밤을 어디 가서 어떻게 넘길까 하고 고심을 하고 있던 차 우연하게도 길가에서 목상을 만나게 되었고, 또 그러한 가운데 가네모도씨를 만나 잠자리는 물론 일자리까지도 구하였으니 자다가 얻은 떡과 같이 꿈인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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