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일본 적응기 4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4


한 반에 같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도 미움을 받지 않고 나를 친동생처럼 귀엽게 봐주었다. 그중에서도 안동이 고향이라는 권씨라는 분은 내 말이라면 무조건 믿었고, 나를 친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귀엽게 여기고, 다소 잘못된 점이 있어도 감싸주었다.


나는 군위군이 고향이요, 그분은 안동이 고향이니까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였다. 나와 같이 짝이 되어 일을 하는 야시모도씨도 내가 하는 말에는 무조건 귀를 기울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다가 보니 나로서는 저절로 신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 뇌리에 떠나지 않는 근심은 도망병 그것이다. 언제 어느 때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나이지 않은가. 노상에서나 일을 하는 도중에라도 증명을 보자고 하면 나는 꼼짝없이 잡히고 만다. 한편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태산같은 걱정이 흉중을 꽉 메우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가 그러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모른다. 탄광에서 도망처 나온 것만은 사람들이 알아도 도망병 탈영자라는 것은 누구도 알 리가 없다. 그것은 내 목숨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그 말만은 전연 입밖에 내지을 았았다. 먼발치로 오가는 우체부만 보아도 저것이 순사이지 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그렇게 겁을 내어 쩔쩔매는 것을 보면 멋 모르는 사람들은 그까짓 것 걱정할 것 하나 없다. 설사 탄광 도리시마에게 잡힌다고 하여도 우리 회사 사장 말 한마디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거짓 없이 살아가겠다는 나였지만, 내가 일본군인 1기생이라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좋은 시가지 구경마저도 해보지를 않았다.


하루 일하고 하루 놀고 이틀 일하고 하루 노는 사람이 그 방중에도 거의였다. 그러나 나만은 그러하지가 못하였다. 누군가 혹 놀러 가자고 하여도 나는 고단하다는 핑계를 대고 거절을 하곤 하였다. 그러하므로 주인과 회사 사장은 나를 근면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까지 해 주었다.


같은 사람인데 나라고 해서 구경하는 것조차 모를 턱이 없지 않은가. 나도 누구 못지않게 노는 데는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바보 천치 짓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 현장에 들어가서 첫날부터 일을 한 것이 사십오일 동안 하루도 놀지 않고 꼬박 일을 했다. 그래서 나는 보통사람들에 비하여 세 사람의 품삯도 넘게 받았다. 거기다가 회사 사장은 나에게 상금조로 식대 일절을 주었다. 그래서 한 달 반 동안 꼬박 일한 품삯을 고스란히 찾았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밥 주인 마스모도씨는 나처럼 그렇게 고집스럽게 일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였다. 나는 거액을 찾아 양복을 한 벌을 사 입었다. 그리고 남은 돈은 주장에게 맡겨 두었다.


얼마 후 나와 같이 일하던 야시모도씨가 내게 말했다. "미스하라, 우리 사세보 항에 구경 한 번 가보자. 요술 구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하더구만..." 하는 것이다. 그는 내게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날은 일본 전국 사람이 노는 날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조선땅에서 처음 건너왔으니까 구경을 해보라는 그러한 뜻도 된다.


허나 나는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증명도 없이 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야시모도는 "그까짓 것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 모든 책임은 내가 지지" 하면서 굳이 고집하였다.


그가 내게 대하는 정을 보아서도 나로서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십원의 돈을 받아 야시모도와 함께 구경을 갔다. 하이끼에서 사세보까지 가자면 삼십 리 길이나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야만 했다. 기차를 타게 되면 증명조사가 연발 있기 때문이다.


[하이키 ~ 사세보]

하이키 사세보.png


나는 난생 처음으로 새 양복을 입고 야시모도씨와 같이 시가지로 나갔다. 하이끼시도 보기 보다가는 꽤나 넓다. "하이끼맛찌, 하이끼맛찌"하는 말만은 들었어도 하이끼맛찌를 구경하는 것은 그날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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