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5
우리는 하이끼맛찌를 지나 사세보항으로 걸었다. 두 시간 반쯤 걸어서 야시모도와 나는 사세보항 입구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바로 입구는 검문소가 하나 있다. 그 검문소에는 순사와 헌병 두 놈이 서 있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헌병 놈은 군인에 관한 조사를 하는 놈들이 아닌가. 만일 그들의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 있다면 내 인생은 그날로 끝이다. 나는 주저주저하였다. 그러나 야시모도는 나를 돌아다보며 대담하게 걸어오라고 하였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검문소 앞에 이르니 그들은 우리들의 가는 길을 막고 증명을 내어놓으라고 하였다. 야시모도는 물론 증명이 하나 있다. 허나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서투른 일본말로 급작스럽게 오는 바람에 "대찌요"를 집에 두고 나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시내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 되돌아가서 증명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그들은 내 말이 사실인 줄 알고 그렇게 말을 한다.
일본말을 잘하는 야시모도가 그들에게 사정을 했다. "우리는 지금 쇼 구경을 하러 가는 길입니다. 지금 되돌아갔다가 오면 쇼가 끝이 날 텐데, 오늘 한 번만 봐주시오. 다음부터는 명심하겠습니다."하고 사정 얘기를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얼마동안 생각하더니만 다음부터는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갔다가 오라고 하였다.
그 당시 사세보항에는 해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세보 앞바다에 수없이 많은 비행선과 군함들이 꽉 차 있었다.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한 나는 그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혀 있고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악독한 일본놈들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어리석은 편이었다.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무사히 근무소를 통과한 야시모도씨와 나는 사세보 시가지로 들어가 극장을 찾아갔다. 아주 작은 극장이었다. 그리고 그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얼마동안 기다리고 있어도 무엇인가를 보여주지를 않았다. 왜인가 하고 나는 야시모도에게 물었다. 그러자 야시모도씨도 "글쎄 잘 모르겠는걸, 선전만 보고 왔더니만 별로인가 봐" 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극장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이를테면 약장수 선전 비슷하기도 하고 이동하는 극장 그 따위였다. 그래서 일일 이막 밖에는 안 하는 극단이다.
그러나 나는 출생 후에 그와 같은 구경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약간 지루하기는 하나 나는 기대를 가지고 어떠한 극일까 하고 초조히 기다렸다.
얼마 후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왜녀가 뛰어나와 부채를 손에 들고 춤을 춘다. 일본 여인네들의 춤은 우리 조선 사람들의 춤과는 아주 다르다. 예쁜 얼굴 그것 하나밖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 야시모도의 말만 듣고 괜히 따라와서 고생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뿐이다.
춤이 끝이 난 다음 일본놈들의 긴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 노래의 곡은 "나이야부시"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로 이를테면 평양수심가와 전라도 육자배기와 비슷하다. 말이 능숙하지 못하여 잘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그 가사는 꽤나 구슬픈 모양이다. 그 노래를 할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는 듯하였다.
춤을 추고 노래를 한 뒤에는 묘기가 시작되었다. 야시모도씨가 요술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묘기를 말하는 모양이다. 작은 손수건 속에 비둘기가 나오는가 하면 모자 속에서 수도 없이 많은 돈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밥상 위에 사람을 올려 세워놓고 상다리를 하나씩 빼기 시작한다. 제일 처음에는 상다리 한 개만을 뺀다. 그런 뒤 무어라 중얼중얼하더니만 또 한 개를 빼낸다. 이제는 상다리가 두 개 밖에 없다. 그런데도 상과 사람은 넘어지지 않고 그로 꼿꼿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 모양 혈색이 전혀 없고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요술인지 기술인지 아무리 보아도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뒤 얼마 후 그 요술쟁이는 또 하나의 상다리를 빼버린다. 이제는 단 한 개의 상다리가 남아 있다. 그런데도 사람과 상다리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신의 재주가 아니고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뒤에 무슨 기구나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그치지를 않았다. 마지막에는 한 개 남은 상다리 마저 빼버린다. 그러자 밥상판자는 털거덕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아무 데도 닿은 대도 없이 혼자서 공중에 둥둥 떠있지를 않는가.
삼십 리 길을 걸어서 간 대가가 그 하나의 구경만으로도 충분하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해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나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우리 두 사람은 많은 요술들을 구경했다. 아침에 들어갈 때 천장에 매달려 있던 상자 속에서 그 막이 내릴 무렵 그 상자를 내려보니 그 상자 속에 예쁜 여인이 하나 들어 있었다. 숨도 쉴 수 없는 그 작은 상자 속에 어떻게 해서 그 속에서 사람이 나오나 하는 것이다.
묘기란 말만은 들었어도 그와 같은 신기한 묘기는 난생 처음 구경한다. 일본 땅에서 십수 년 동안 살았다는 야시모도씨도 그런 구경을 처음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