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6
오후 세 시경에 구경을 끝내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하게도 돌아올 때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간 야시모도는 그날 있었던 일을 하나 빼지 않고 죄다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네 오늘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렇지, 미스하라 군이 거기서 잡혔더라면 어쩔 뻔 했노. 하마트면 큰일 날 뻔했어.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말아라."하고 야시모도를 나무랐다.
사실 그렇다. 사세보항에서 불행하게도 헌병들한테 잡히기라도 했다면 주인장의 말과 같이 내 인생은 거기서 끝이 나고 만다.
저녁밥을 먹으면서 야시모도와 나는 주인장의 얘기를 들었다. 안동이 고향이라는 야마모도씨도 내편에 서서 야시모도를 나무랐다.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을 그렇게 경솔이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쨌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귀가한 것이 다행이다.
그런 뒤 십여 일 후 우리는 그 공사일을 마쳤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주인 마스모도씨는 분주하게 날뛰었다. 그것은 일자리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군들은 가만히 앉아 놀다가 주인이 일자리를 구해 놓으면 주인을 따라가서 일을 하는 것이 일본땅에서 통례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노동자들은 그다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가고 싶은 사람들은 가고 있고 싶은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주인이 다 해결을 한다. 숨어 다니는 나로서는 천만다행한 일이다. 증명도 없는 내가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매우 위태롭다. 마스모도씨가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우리는 한방 안에서 놀았다.
그리고 심심할 때에는 하이끼 시가지로 나가 거리의 풍경도 구경했다. 어떤 날은 나도 같이 구경을 나갔다. 하이끼시는 사세보시와는 아주 달리 농촌의 마찌이다. 그러므로 군경이 그다지 많지 않다. 간혹 있다고 해도 그들은 그저 치안에만 눈을 돌릴 뿐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죄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 놓고 다닐 수 없었다. 간혹 나간데도 저녁에만 나가서 구경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 마스모도씨는 일거리를 구해 놓고 왔다면서 한방으로 들어와서 의기양양하게 말을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일거리가 어디쯤 있느냐고 물었다. "바로 하이끼마찌 건너편에 있지. 아리후꾸라는 곳이야."하고 주인은 대답했다.
바로 곁에 공사장이 있다는 말에 나는 다행하게 여겨졌다. 또 다른 낯선 곳으로 간다면 나는 또 걱정이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세보처럼 조사가 심한 곳이라면 마음이 불안하여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공사장이 바로 옆에 있다니 심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주인 마스모도씨도 그 공사장의 세밀한 내력은 잘 모른다. 일이 많이 있다는 말만 듣고 함바를 정한 모양이다.
때는 음력 십 월인지라 이사를 가야만 하는 그날에는 진눈깨비가 흩뿌리고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험상궂은 날씨였다.
그런데도 우리 일행은 짐을 다 꾸려 이삿짐을 싣고 그곳 애가미무라를 떠났다. 그때까지도 주인 마스모도는 우리들이 가서 있을 장소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회사의 말만 듣고 이삿짐을 꾸려간다. 우리 일행은 모두가 주인이 가자는 데로 따라갈 수 밖에는 없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주인의 사위 되는 사람을 만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함바집이 아직도 사람이 들어가게 되자면 십여 일 후에라야 된다고 했다. 집도 없는 산골에 우리는 이사를 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가 떠날 때에 살던 집을 싹 뜯어버리고 나왔으니 하는 말이다.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입장에 놓여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도에서 이삿짐을 풀고 의논을 하였다. 때는 석양 나절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함박눈이 박을 푸듯 펑펑 쏟아졌다. 주인아줌마는 당신의 남편에게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느냐고 하면서 등에 업고 있던 외손자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그러자 주인 마스모도씨는 회사에서 하라는 데로 했을 뿐이라고 도리어 소리를 빽빽 지른다. 그런다고 안 되는 일이 될 턱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에게 본사를 들어가 보라고 했다. 그러자 주인 마스모도씨는 그 일은 본사가 없고 육군본부 직영이라고 하였다. 주인장의 말대로라면 그 공사는 긴급공사이면서 군부에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 몇 사람이 그 부근에 있는 군부로 찾아갔다. 그리고 몇몇 사람은 눈발이 날리는 노상에서 이삿짐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 후 일본 헌병들이 사오명 나와 이삿짐을 옮기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자동차에 짐을 싣고 헌병들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을 따라가 보니 하이끼 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극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일행이 들어갈 때에는 컴컴한 밤인지라 무대 위에서는 한창 연극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극장 안으로 이삿짐을 싣고 들어갔다. 그것은 군부의 힘이 아니면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몰라도 우선을 즐거웠다.
촌뜨기 나로서는 그 누구보다가 기쁘다. 다행하게도 그 극장 안에는 탈의실 말고도 커다란 방이 세 칸이나 놀고 있었다. 그러므로 한 방에 있을 때 보다가는 잠자리가 훨씬 편하다. 그리고 저녁마다 공짜 구경을 할 수가 있다. 영화, 연극, 노래 구경거리는 가지각색으로 많다.
때가 크리스마스 때인지라 구경거리도 좋은 것이 많이 들어온다. 나는 젊은 마음에서 한평생 그러한 곳에서 살고 싶었다. 목숨만을 구걸하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돈이나 명예 따위는 필요가 없다.
세비로 양복에 깃또 구두를 신는 것도 내게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살아남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하므로 항상 나의 바람은 일본놈들이 하루빨리 망하는 것 그것 밖에는 없다. 허나 그 당시 일본놈들은 중일전쟁에서 남경을 함락하고 대동아 전쟁에서는 하와이와 싱가폴을 점령하였으니, 나의 간절한 꿈은 그저 요원하기만 하다.
그저 세월이 가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는 별 다른 도리가 없다. 말하자면 하루살이 인생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