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일본 적응기 8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8


어느 날 오후였다. 마스오까 감독이 나를 부른다. 말도 하지 않던 그가 어인 일로 나를 부를까 하고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미스하라군, 우리 이 일이 끝나면 가고시마로 한 번 가보자꾸나. 우리 오노 사장님이 미스하라군을 같이 가게끔 하라고 내게 부탁을 하였네. 사장님이 미스하라군을 잘 보았는 모양인가 봐."하고 내게 특보를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형편이 안 된다. 그것은 내게 대쪼라는 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나는 대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멀리 갈 수가 없습니다. 나도 마음에는 그런 곳에 가서 일을 하고 싶지만 형편이 그러하니 어떻게 합니까?" 하였다. 그러자 마스오까씨는 "그렇다면 사장님께 대쪼를 하나 부탁해 보지. 우리 사장님은 경찰서 쯤은 어렵지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내 집같이 드나들고 하니까 증명 하나쯤은 부탁만 하면 문제가 없을 거야." 하고 말을 했다.


나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증명이다. 증명 하나만 있으면 일본땅 어디를 돌아다녀도 아무 걱정이 없다. 그 당시 나는 증명 하나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스오까씨의 그 말 한마디에 온 정신이 쏠려 그렇게만 된다면 좋다고 하였다. 쾌히 승낙을 하자 마스오까씨도 싱글벙글 기뻐하는 표정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도피자 나로서는 대쪼 하나만 있으면 이제 죽는데도 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십일 후 그 히라다 공사는 끝이 나고 우리 일행 몇 사람은 마스오까씨 말 그래도 가고시마로 떠나게 되었다.


어떻게 보았던지 오노 사장을 가고시마깽 가노야시 현장에 이를 때까지 우리 일행과 도구들을 내게 책임을 지라고 하였다. 이십여 일 동안 오노 사장 밑에서 일을 하기는 했으나, 그를 상면하여 대화를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사장 오노가 내게 그와 같은 중책을 맡기는지 통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의 현장에서 그저 평범하게 일을 한 것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나를 신임하고 중요한 도구를 내게 맡기니 하는 말이다. 이것은 분명 마스오까씨가 오노 사장에게 내 말을 두둔해서 한 듯하다.


어쨌건 나는 기쁘다. "일본땅에 처음으로 건너온 촌뜨기 내가 그것도 도망병, 탄광탈주자 내가 한 회의 사장의 신임을 받다니 거기다가 증명까지 얻게 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우리 일행은 나가사키깽 하이끼시 히라다 국민학교를 떠나 하이끼역에서 기차를 탔다.


하이끼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고시마 쪽으로 가자면 기다가다 탄광 앞을 거쳐서 가야만 한다. 나는 그것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조바심이 나서 일각이 여삼추와 같았다.


일본인 마스오까씨가 같이 가기는 하지만 그의 힘으로도 아니 될 일이 있다. 그저 탄광에서 도망을 쳐서 나왔다면 그것은 그다지 큰 죄가 아니다. 그렇지만 훈련생이 훈련을 받다가 탈영을 한 죄는 그 누구도 말로써는 때울 수가 없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째 탈영을 한 나이다.


그러니 이제는 잡히기만 하면 내 인생은 끝이 나고 만다. 왜놈들의 군법대로라면 탈영자는 잡히는 그 당장에서 총살을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만큼 마스오까씨가 같이 간다고 해서 내게 도움이 될 턱이 없다.


탄광에서 도주를 한 그 죄만 없어도 일본경찰로서는 내 얼굴을 알 턱이 없다. 하지만 내가 탄광에 있었기 때문에 탄광 도리시마 녀석들은 내 얼굴을 다 안다. 그러므로 나로서는 더더욱 똥줄이 탈 수 밖에는 없다.


허나 이제는 기차에 몸을 실었으니 운명에 맡길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나는 하이끼시 역에서 기차를 타고나서부터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느님 나를 살려주소"하고 기도를 했다.


일본인 마스오까 감독은 내가 하는 행동에 눈치를 채고 "미스하라군, 그까짓 도리시마 따위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무사하게 가도록 다 말을 해 줄 테니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소." 하였다. 마스오까 감독은 아직도 내가 탈영병이라는 것을 모른다. 왜놈들이 그 사실을 알면 우선 마스오까부터도 내 편에 서지를 않을 것이 뻔하다.


전쟁터에 나갈 군인이 훈련 중에 도주를 했다면 내가 그였어도 나를 위하여 봐줄 턱이 없다.


삼십 분 후에 우리가 탄 기차는 기다가다 탄광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눈을 떴다. 기차 안에서 기다가다 탄광 사택이 보였다. 나는 그 역세 기차가 정거를 할 때에 너무나도 긴장되어 온몸에 땀이 주룩 흐른다. 다른 사람들은 전연 그 현황을 알 턱이 없다. 내가 죽어보지 않고서는 죽는 것이 얼마나 괴롭다는 것을 모르듯이 진실을 겪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다.


이삼 분 후 다행하게도 내가 탄 기차는 아무 일 없이 기다가다 역을 떠난다. 그 떠나가는 소리는 "너는 살았다."하고 외치는 소리와도 같았다.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것처럼 기쁘다. 그렇게 조사가 많은 기다가다역을 무사히 통과한 것은 분명 신이 나를 도운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창밖을 내다볼 수가 있었다.


하루 종일 기차는 남으로 남으로 달려간다. 석양 나절에 이를 무렵에서야 우리들이 탄 기차는 가고시마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그곳이 가고시마깽 소재지인 모양이다. 항구 도시인듯하여 보이며 꽤나 넓고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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