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9
기차를 타고 하룻길을 왔으니 이제는 탄광 도리시마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오노 사장이 대쪼 하나만 내어준다면 이제 나는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우리가 일하러 가는 곳이 헌병들이 우글거리는 비행장이라고 하니 외부의 인사들과는 접촉할 필요조차도 없다.
우리 일행은 가고시마 도착 즉시 여관으로 들었다. 그때 온 사장은 같이 가지 않고 마스오까씨가 주인이 되어 같이 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스물한 살짜리 내가 우리 일행 십 명 식구들을 인솔 또는 행동을 같이 했다. 하루 밤을 여관에서 지낸 뒤 우리 일행은 가노야 현장으로 떠났다.
가노야라 하는 곳은 반 섬의 고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곳에서 배를 타고 가노야를 갈 수밖에는 없었다. 우리는 바닷가로 나가 연락선에 올라탔다. 연락선이래야 사십여 명이 탈 수 있는 그러한 자그마한 소선이었다.
[가노야 위치]
그 배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많이 탔다. 잠시 후 연락선은 가고시마 항구를 떠났다. 그곳에서 얼마가지 않아 기리시마가 보인다. 그 기리시마라는 산은 전부가 꽃은 빨갛게 물들어 있다. 그렇게 쌀쌀한 날씨에 산 전체가 꽃으로 덮여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인들에게 그 꽃의 내력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그것이 꽃이 아니라 모두 바위돌이라 하였다. 믿을 수가 없다. 바위돌이 어떻게 해서 꽃으로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도 멀다면 또 모른다. 불과 일 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산이 그렇게 보일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기리시마의 산 전체의 색깔이 참꽃으로 꽉 덮여있는 듯싶었다. 일본인들이 바윗돌이라고 말을 했는데도 나는 아무리 다시 보아도 분명한 꽃이다. 그래서 일본 노래에 하나와 기리시마 타바꼬와 고꾸부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나와 기리시마, 타바꼬와 고꾸부(花は霧島、煙草は国分)"라는 문장을 들어본 적 있다. 이는 일본 가고시마현의 특정 지역들을 대표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각 지역의 유명한 특산물이나 이미지를 연결하여 간결하고 인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고시마와 가노야 사이에는 해경도 여간 아름답지가 않다.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섬들, 거울처럼 맑은 파아란 바다, 통통통 울리는 엔진 소리, 순박해 보이는 가고시마 여인들의 모습들, 바람 한 점 없는 검푸른 창공에 간혹 엉켜 있는 잔잔한 실구름들, 그 모두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우리 조선땅에도 많은 절경이 있지만, 그와 같은 고상한 절경은 처음으로 구경해 본다. 늘 그곳에 사는 일본인들도 기리시마 부근에 연락선이 지나갈 때는 숨을 죽이고 그곳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