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0
오륙 시간 후 우리는 그 바다를 건너갔다. 배에서 내려 우리는 또다시 기차를 탔다. 그곳에서는 가노야시가 얼마 되지 않는 모양이다. 마스오까 말대로라면 사오십리밖에는 안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기차는 오르막 길을 가느라고 한 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정오 때 가서야 우리는 가노야시에 도착하였다. 시라고 하기는 하여도 그 역은 어딘가 모르게 초라해 보였다. 섬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우리 일행은 가노야 역에서 내려 현장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만 하였다. 그곳에서 현장까지는 약 이십 리쯤 된다고 하였다. 마스오까씨가 앞을 서고 우리 일꾼들은 뒤를 따랐다.
시가지를 벗어나 넓은 들판에 이르렀다. 그 들판은 모두가 밭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들판에는 어린 풀들이 자라서 들판이 파랗다. 그리고 채소들이 제법 봉울스럽게 자라고 있다. 그 당시 나가사끼 지방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을 때이다. 남쪽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기온차가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하였다.
나가사끼에서 입고 간 옷을 그대로 입고 가니 땀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완전한 하절기처럼 느껴진다. 조선땅에 있는 우리 고향 화수동이라면 한참 추울 엄동설한이다.
우리는 마스오까씨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온도가 따습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마스오까 노인은 그곳은 겨울철에도 풀들이 자란다고 하였다. 온대지방이라 하기 보다간 열대지방에 가깝다는 것이다.
들판 한가운데로 약 이십 리쯤 걸어갔다. 그곳에는 작은 촌락이 하나 있었다. 마을이름은 <고노하라>라고 하였다. 모두가 초가집들이다. 이들 초가집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그 모형이 같다.
우리는 그 마을에 주인을 정했다. 다나까라는 사람의 집에 주인을 정한 것이다. 그 주인댁에는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다들 온순한 편이었다. 그 댁 아들은 그때 벌써 삼십이 넘은 듯하였다. 노총각이다. 그리고 그 밑에 여자 동생은 스물 넷이라고 하였다. 예쁘장하게 생겼다. 나보다가 두 살 위라고는 하지만 보기에는 나보다가 훨씬 어려 보였다. 그의 이름은 다나까 에이고였다.
서투른 일본 말이지만 나는 금방 그녀와 친하였다. 내가 그녀를 따른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나를 따랐다. 그 풍속이 조선땅과는 달라서 그녀의 양친부모가 있는 앞에서도 우리 두 사람은 희소담락을 할 수가 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가 나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 기쁘게 맞아 준다. 내가 그녀의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는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양친부모들도 나를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보다가 두 살이나 위이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그저 좋아할 뿐이지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에이고는 내가 현장에 갔다고 오기만 하면 내가 저의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외출을 하는 것조차도 막는다.
영화구경이나 산으로 놀러를 간데도 꼭 내 뒤를 따르곤 하였다. 왜냐하면 그때 시절에는 일본인 남자란 남자는 죄다 전쟁터로 나가고 없다. 늙은 사람 아니면 어린이, 그다음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뿐이다. 에이고가 나를 따르는 원인도 그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같은 조선인에게 그녀가 매달릴 이유가 없다.
어쨌건 막살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갑갑한 세상 우울하게 넘기는 것 보다가는 그녀가 그렇게 함으로 해서 약간의 지루함을 잊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