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1
보이인 듯한 젊은 남자가 하나 나왔다. 그자는 대번에 나의 차림새부터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나는 그자에게 저 버스 안에 있는 쌀가마를 가지고 오라고 말을 했다. 내 행색과 그 쌀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지 그 여관 보이는 놀라는 기색으로 한참 동안 나를 빤히 쳐다본다.
덥수룩한 작업복을 입은 내가 백만장자라도 가지고 올 수 없는 쌀을 한 가마니나 가지고 왔으니 그가 놀라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때 시절에 일본땅에서는 금 보다가도 쌀이 훨씬 귀하였다. 그것도 비밀리에 매매가 이루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보이는 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쌀 한 가마니를 본 그 여관 주인은 내가 상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찾아주어서 감사하다고 백 번 천 번 더 인사를 거듭했다.
여관을 정한 뒤 나는 부스럼 온천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 부스럼 온천은 집도 절도 없는 깊은 산골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아픈 몸을 억지로 끌고 부스럼 온천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온천 부근에는 수목들만이 울창할 뿐 비를 피할 원두막 같은 작은 집도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부스럼 온천은 아주 바위 굴 속에 있었다. 그러므로 처음 찾아간 사람은 누구도 얼른 찾을 수가 없다.
나 역시도 여관 주인에게 그렇다는 얘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되돌아 나왔을는지도 모른다. 바위돌을 타고 올라가서 여관주인이 시키던 대로 암석 굴 문 앞에 이르렀다. 문 앞에 가서 보아도 굴 속은 전연 안 보인다. 그것은 수증기가 굴 속에 꽉 차서 그런 모양이다. 그러므로 그 굴 속은 얼마나 깊은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문 앞에 가서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통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장님 걸음으로 가만가만 발걸음을 옮겨 굴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굴 속에서 무슨 소리가 웅 하고 난다. 들어가던 나는 깜짝 놀라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어 귀를 기울였다. 귀신의 울음소리와 같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 사람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백주 대낮에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와 같은 소리가 날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나는 발길을 멈춘 채 얼마간 서 있었다. 그다지 깊은 굴은 아니다. 사람의 형태도 어슴프레 보인다.
나는 그리로 바싹 다가갔다. 불이 켜져 있는 목욕탕 같이 훤히 보이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 굴의 윤곽도 사람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차츰 밝아져 온다. 그런데, 그 굴속에는 작은 석함이 하나 있는데, 그 석함에 고인물이 온천수이다. 석함이 너무 작아 두 사람이 들어앉아 목욕하기에는 불편할 정도이다.
자세히 보니, 그 욕실 안에는 한 여인이 들어앉아 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몸이 아파 죽을 지경인데 몸을 씻을 곳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 여인이 내 사정을 알 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행동을 봐서는 남자가 들어갔다고 해서 얼른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다. 태연스럽게 앉아 있다. 물론 나체이다. 그럼에도 남자를 보고도 부동자세로 저의 몸만 씻고 있었다. 우리 조선 땅 같으면 기함을 하고 도망을 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