ㅐ추억 3
에이고에게 그렇게도 매정하던 내가 별안간 왜 그렇게 변했는지 나도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여관에 들어가서 침대 위에 누워 있어도 내 눈앞에는 미에고의 얼굴만이 아롱거릴 뿐이다.
스물두 살이 될 때 까지도 누구를 사모하고 사랑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던 내가 미에고에게는 웬일인가 그렇게 마음이 끌려갔다.
다음날도 일조식하고 나는 온천을 찾아갔다. 그렇게 일찍이 미에고가 찾아올 리 없다. 그렇지만 나는 만나 보겠다는 초조한 마음에서 새벽같이 굴을 찾은 것이다.
그날 아침 기리시마에 산골짜기는 짙은 안개로 꽉 덮여 있었다. 나는 그녀가 오기 전에 온몸을 말끔히 씻었다. 아주 몸이 홀가분하다. 이틀도 안 되어 내 몸의 병은 완전히 다 나은 것 같다. 기리시마의 대끼몬 온천은 의사보다도 낫다. 병원에 가서 온갖 주사를 다 맞아도 낫지 않던 병이 그처럼 빨리 나을 줄이야.
스물두 살 때 내 몸은 팔십 킬로가 조금 넘었다. 아주 건강체였다. 그다지 뚱뚱한 편은 아니었는데도 몸무게는 그렇게 나갔다.
열 시경이 다 되어 미에고가 들어온다. 나는 그에게 와락 다가들고 싶은 심정이다. 허나 나는 태연스럽게 앉아서 점잔은 척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도 반가이 나를 맞는다. 나는 그날 아침부터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인정으로 애교로 타일러서 되지 않는다면 힘으로라도 내 품 안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때 미에고는 개인 주택에 주인을 정하고 있었다. 쌀을 구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나는 그날 미에고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이 한 달을 먹어도 남을 정도의 쌀을 여관에 맡겨 두었으니 오늘부터는 우리 같이 먹기로 합시다." 하고 말한 것이다. 그러자 미에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씀은 고맙지만 우리는 아직 서로 간에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말을 했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 비록 일본인이라고 하나 부모밑에서 자란 그녀였기에 약간의 예의범절은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잠은 따로 자고 조석만은 같이 하자고 하였다.
그러자 미에고는 쌀을 얼마나 가지고 왔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한 가마니를 가지고 왔다고 하였다. 내 말을 들은 미에고는 깜짝 놀랐다. 그때 시절에 한가마의 쌀을 가지고 왔다니까 그녀가 놀라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니다.
왜정 말엽에 쌀이라면 금은보화 보다가도 더 귀중한 것이다. 수백리를 가서 쌀을 구하려고 발버둥 치던 그런 때이다. 백만장자라 할지라도 여관에 쌀 한 가마니를 가지고 온 사람은 없다. 돈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쌀을 살 수가 없는 그때이다.
여관 주인이 나 같은 촌뜨기를 상전 모시듯 할 때면 말을 하지 않아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집에서 농사를 짓는 미에고가 한 가마니의 쌀에 놀란다면 왜정 말엽이 얼마나 비참하였다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들은 미에고는 일응 마음이 끌리기는 하나 그녀 역시 장래를 약속하는 터라 쉽사리 대답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날 하루 해도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