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일본 여인 미에고 8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8

어쨌건 미에고는 나를 당신의 전부인양 생각하고 지극히 사랑을 했다. 열 달이 지난 뒤 미에고는 출산을 하였다. 여자 아이다. 미에고를 닮아서 여간 이쁘지가 않다. 그의 이름을 요시꼬라고 지었다.


이제 우리는 세 식구다. 이제 미에고도 미스하라상이라는 말을 버리고 아빠라고 부른다. 기구한 운명 속에서도 새싹은 돋아나고 도망병이라는 처절한 입가에서도 간혹은 웃음꽃이 필 때도 있다. 이렇게 됨은 다 미에고의 덕이라 생각된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늘도 씁쓸한 하루해를 보내며 고향산천만을 가슴속에 그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한 따분한 세월이 지속되면 비록 살아 있다고는 하나 죽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랴. 따지고 보면 산골에서 얻은 심심풀이의 여인 같지만 미에고를 그곳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예측 못할 앞날을 생각하며 노름판에 나돌아 다니면서 덧없는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을 것은 너무나도 뻔하다.


나는 그전에 나 혼자 살 때에는 노름을 하는 것이 나의 낙으로 삼고 여가가 있으면 노름을 하였다. 돈이 내게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 고향 조선땅에 가족들이 다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편지를 할 수가 없으니, 단신 단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돈이 무슨 필요가 있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점점 인간 낙오자가 되어가고 있던 중 미에고를 만났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처자식이 있다는 생각에서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노름판에서 손을 떼고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몇 달 가지 않아 나는 열심히 일을 하여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러자 미에고는 기뻐서 어쩔 바를 모르고 때로는 부엌에서 콧노래까지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고향 땅에 있는 가족들을 잠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부모님이 보고파서 환장이 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다 못하여 고향집으로 편지를 하였다. 이제는 일 년여의 세월이 흘러갔으니 편지를 하여도 내 편지가 집으로 곧장 바로 들어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띄운 뒤 꼭 삼일 만에 일본 헌병이 내 직장으로 찾아왔다. 한 사람도 아닌 헌병 두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은 커다란 봉투를 내 앞에 내밀면서 조선에서 훈련을 하다가 왜 도망을 했느냐고 하면서 따지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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