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의 일본 여인 미에고 7

by Branmaker 박중규

추억 7


오기가 바쁘게 미에고의 양친은 미에고를 매우 꾸짖었다. 아무리 철이 없는 어린아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에게 우리 주인아줌마가 내 사정 얘기를 잘하여 딸을 맡겨도 아무 걱정이 없을 거라고 자상하게 말을 해 주었다.


같은 일본 사람이니까 미에고의 부모님도 주인아줌마의 말을 십분 믿는 듯 호통을 치며 꾸짖던 높은 목소리가 차츰 줄어들었다. 사실 미에고의 부모가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하여도 이제는 내가 답답할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신의 딸과 이미 한 달여를 같이 살아왔으니 내게 무슨 말을 한데도 두려울 것이 전연 없다. 오히려 그쪽에서 내게 빌고 들어야 할 판이다.


그러므로 그 부모님들이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하여도 내쪽에서 빌고 들 이유는 없다. 다만 사람의 도의상 나는 입을 닫고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 두 사람은 아직 결혼 약속도 한 일이 없다. 단지 서로 간에 의견일치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와서는 내게까지 위협을 주며 달려들더니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분들의 목소리는 차츰 낮아져 갔다. 이제 와서 사실 미에고를 데려간다고 하여도 내가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들이 무슨 소리를 하여도 태연스럽게 듣고 앉아 있었다.


주인아줌마도 나의 행동을 보면 내 속셈을 헤아릴 수가 있다. 그러므로 아줌마도 내편에 서서 미에고의 부모님을 설득시켰다. 그래서 나중에는 미에고의 부모님도 우리 둘의 앞날을 걱정해 주었다.


밋짱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어서 우리들의 사는 형편은 그분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시고꾸 땅에서 가고시마에 딸을 두고 떠나는 그 부모의 마음 좋을 리는 없다. 더군다나 조선 사람에게 딸을 맡기게 되니 미에고의 부모님도 마음이 좋을 리는 없다.


그러나 딸은 이미 물을 건넌 송아지꼴이 되어 있으니 이제 와서 중언부언을 한다고 해서 본래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 미에고의 부모님도 생각하다가 못하여 결국에 가서는 우리들의 결혼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예식장까지 가지는 않았어도 우리 두 사람은 이제 정식 부부가 된 것이다. 이를 안 동료들은 부조와 많은 선물을 하였다. 회사에서 오노 사장으로부터도 한 가마의 쌀을 보내주었다. 그를 본 미에고의 부모님들은 그때서야 내 두 손을 꼭 검어 쥐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알아서는 더욱 아니다. 친구들이 나를 따르고 회사 사람들이 왜인가 나를 잘 봐주는 덕택으로 남이 나를 믿는 것이다.


며칠을 쉬어 미에고의 부모는 시고꾸로 돌아갔다. 그런 뒤 미에고는 곧바로 임신을 했다. 고향인 조선땅에서 처를 둔 나로서는 양심의 가책이 되어 한편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당시 사정을 보아서는 그럴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또 하나 미안한 것은 내가 유부남이라는 것을 미에고는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두 여인에게 실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내 입장이 그렇다 보니 그러지 않고는 내 몸을 부지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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