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6
그곳에서 우리 두 사람은 10일을 더 지났다. 그런 뒤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가노야 비행장으로 가기로 하고 그곳 기리시마 온천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하차를 하여 고꾸부 부근에 있는 과수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열매를 처음으로 구경한다. 앵두나무 비슷하게 생긴 나무에 과일의 크기는 살구만큼 하고 이름은 "비야"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맛은 어느 과일 보다가도 맛이 있다. 그 과일을 어느 아이들이 먹다가 배가 터져 죽었다는 전설 같은 사실도 있다고 하였다.
비야라는 그 과일은 참으로 어디 비유할 데 없이 맛이 좋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그곳을 찾은 것은 그 과일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우리 두 사람의 신혼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그곳에서 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하루라도 가면 갈수록 우리 두 사람의 정은 점점 깊어만 갔다. 그곳에서 하루 밤을 지난 뒤 미에고와 나는 가노야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가노야 버스 종점에 내려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곧바로 한방으로 달려갔다. 우리 한방 주인은 조선 사람이요, 여주인은 일본 여성이었다. 그 주인아줌마의 이름은 밋짱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한방으로 들어가자 밋짱 아줌마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조선 사람들 속에 혼자서 살다가 일본 여인이 한 사람 더 늘게 되니 그 아줌마도 미에고도 서로 간에 의지가 될 수 있고 말동무가 되어 나쁠 것이 없다.
주인아줌마가 좋아하니까 미에고도 그다지 어색함이 없었다. 그리고 주인아줌마는 금방 이웃에 가서 우리가 살 방 하나를 구해 주었다. 그것은 단순 미에고를 위해서가 아니다.
일본놈들이 우리 한방을 쳐들어올 때에 나 단독으로 그 일을 무마시켰기에 그 아줌마는 고맙다는 뜻에서 내일을 그렇게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해서 우리는 가는 그날로부터 딴 방 거처를 하게 되었고, 살림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나는 한방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미에고는 당신의 친정으로 편지를 하였다. 그의 편지를 받은 즉시 미에고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그곳으로 찾아왔다.
꾸지람을 할 것은 뻔한 일이요 어쩌면 미에고를 데리고 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건 그분들은 내게는 장인 장모가 된다. 그래서 나는 주인아줌마에게 알렸다. 주인아줌마는 금방 달려왔다. 그리고 미에고와 분주하게 음식을 장만하는 듯하였다.